묵상자료

소극적인 신앙인들을 옹호하시는 깊은 뜻. / 막 9:30-41.

박성완 2023. 8. 26. 00:00

묵상자료 8136(2023. 8. 26. 토요일).

시편 시 16:1-4.

찬송 46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올해는 유난히 계절의 변화가 빠른 듯 하지요. 늦여름 바로 이 계절에만 만끽할 수 있는 것은, 가을의 풍성함을 준비하는 자연의 모습일 겁니다. 낱알이 여물어가는 벼 이삭들, 그리고 노랗고 붉게 익어갈 준비를 하는 감이나 대추 열매들 말이지요. 파랗고 단단하게 영근 열매들의 모습, 그 모습에서는 열매들만큼이나 단단한 희망이 느껴집니다. 누구보다 풍성한 가을을 가져다 줄 든든한 약속처럼 말이지요.

    “구름 한 점 없는 조용한 과수원, 소리 없이 맑은 시내 흘러가는데. 나뭇잎 사이사이 조롱조롱 매달린 저 푸른 열매들, 어느 새 저렇게들 자랐을까요? 꽃 피던 가지마다 동그란 푸른 얼굴 어루만지면서, 말없이 가꾸어가는 저 손길을 보라. , 진정한 사람의 그 즐거움이여, , 애태워 키우는 참 기쁨이여, 참 보람이여!”

    순수한 생명력과 희망이 느껴집니다. 작곡가 김규환은 박경문의 시에 곡을 붙여 1971<푸른 열매>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어느 날 <사랑의 열매>로 제목을 바꾸어 다시 한번발표하기도 했고 말이지요. 자라나는 어린이를 바라보는 심경을 열매를 가꾸어 나가는 기쁨에 빗대서 곡을 썼다고 합니다. 맑고 티 없는 그 심상이 곡의 분위기를 통해서 느껴집니다. 박경문 시 김규환 곡 <사랑의 열매>이었습니다<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826일 방송>

 

2. “수난에 대한 두 번째 예고(30-32)”, “누가 제일 높으냐?(33-37)” 그리고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38-41)”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셋째 단락입니다. 어떤 분은 우리들 인간의 불행 중 하나는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복잡하고 편리한 도시생활을 하는 친구는 유유자적해 보이는 시골 생활이 못내 부럽다는 가 하면, 하루도 쉴 수 없게 만드는 시골생활을 하는 친구는 하루 종일 편하게 지내는 도시생활을 부럽다합니다. 저의 시골생활을 부럽다 찾아온 친구는 막상 사는 모습이 너무 힘들다며, “늙어서는 몸이 편해야 돼!” 하며 현재의 자신의 삶에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환경이나 조건에 휘둘리는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마음 수양을 많이 한 사람이 아닌 한, 환경과 조건을 무시할 수는 없겠으나, 결국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는 한,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기 어려울 것이며, 불만은 해소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루는 제자들이 주님께 고자질(?)을 하는 겁니다. 어떤 특정인을 지목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 사람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TV에서 많은 무당과 박수들이 부처를 비롯해서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공자 등의 그림을 탱화처럼 걸어놓은 영업장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객들의 입맛에 맞는 대상의 이름으로 기도도 하고 점도 쳐준다는 말입니다. 무당과 박수들의 영업 방식도 많이 발전한 것이 씁쓸하지만, 그런 무당처럼 신앙생활 하는 크리스천들도 있다는 뜻이니 할 말이 없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고자질에 그러지 말라며, 내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지지하는 사람이고,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밝히며 물 한 잔이라도 남에게 베푼다면 반드시 상을 받을 것이라 하십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항상 부딪히는 문제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치명적이고 심각한 것은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는 편 가르기입니다. 심지어 우리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 편 마귀 편으로 가르기는 일들을 서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제자들은 아군과 적군으로 편 가르기를 시도하는 것에 반해서, 주님은 지지자와 반대자로 정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지자로 분류된 사람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지지가 아니고, 매우 소극적인 지지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님을 따르지도 않고 자기 사업상 유익을 쫓고 있을 뿐인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소극적인 지지자는 첫째는 침묵하는 크리스천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기독교 신앙을 변증할 기회도 능력도 없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비록 타종교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도 강력하게 부정적으로 나서지 않는 경우입니다. 소극적인 크리스천, 주님은 이들을 염두에 두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한때 잠재적 크리스천이라며 적극적으로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노방전도자들은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지금보다는 훨씬 더 신사적이고 품위 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전도자들은 잘 차려입은 정장에 품위를 갖추어 찾아오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전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의 깊은 뜻은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반열에 들어오기를 바라시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원의 판정은 결국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하실 테니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