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짓게 하지 말라. / 막 9:42-50.
묵상자료 8138호(2023. 8. 28. 월요일).
시편 시 16:9-11.
찬송 21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하운 시인은 천성이 의연하고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합니다. 가혹한 병마에 맞서 고난의 생을 살아야 했지만, 그가 생을 비관하지만 않았던 것은, 바로 그 천성 덕분이었던 건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또 하나 시였습니다. 외출조차 자유롭지 못하고 생의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야 했던 한 하운에게, 시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밝은 창 같은 것이었지요. <보리피리>나 <파랑새>처럼, 한 하운을 소록도 넘어 자유의 땅으로 데려다 주기도 했고, 서러운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던, 바로 그 시 말입니다.
“밤을 새워 귀뚜라미 도란도란, 눈물을 감아 넘기자. 잉아 빗는 굴레소리에 밤은 적적 깊어만 가고. 천상스리 한숨 쉬며 어이는 듯한 그리움에, 앞을 흐르는 밤. 눈물은 속된 진저. 오리오리 슬픈 사연을 감아 넘기자. 바람에 부질없이 문풍지도 우는가. 무삼일 속절없는 가을밤이여.”
한 하운 시인은 이미 알려진바 대로 열일곱의 나이에 한센 병 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했습니다. 중국 베이징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서 공무원 생활을 막 시작하려던 스물다섯 살 젊은 나이에, 공교롭게도 한센 병이 더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명동에서 구걸을 하는 떠돌이 시인으로써의 생을 시작했지요. 시어로는 친숙하지 않지만, 굳이 원한이라는 단어를 썼던 시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기도 합니다. 가슴 깊이 맺혔을 서러움과 원망이, 시를 통해 절절히 전해지지요. 한 하운시 최 병철 곡 <추야 원한/秋夜怨恨> 전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8월 27일 방송>
2. “죄의 유혹(42-50절)”을 읽었습니다. 죄를 짓는 일이란 마치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일처럼 성경은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흥미롭게도 죄에 빠지는 일이란, 마치 함정이나 올가미와 같은 덫을 놓아서 걸려 넘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올가미를 말하는 스칸달론(σκανδαλον)의 제1부정과거인 스칸달리조(σκανδαλιζω)를 사용함으로, “죄를 짓게 하는” 역할 혹은 존재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2절, 43절, 45절, 47절에서 동일하게 이 동사를 사용함으로, 능동적으로 죄를 짓는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존재를 죄짓게 하는 역할을 주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이나, “손으로 죄를 짓게 하거나”, “발로 죄를 짓게 하는 것”에 대해서 심판 주께서 반드시 정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게 하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을 비극 중의 비극일 것입니다. 가령 옥살이를 몇 번 하였느냐에 따라서 별이 몇 개라고 하는 우스개는 우스개로 넘어갈 얘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옥살이를 하면서 죄짓는 방법을 지능적으로 배우게 된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이른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악행을 저지르는 방법을 배운다고 하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죄지음에 대한 인식을 능동적으로 죄를 짓는 경우에 한정짓다시피 하였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먹고 마시고 욕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그런 종류의 죄짓기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죄를 짓게 만드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로 생각을 돌리게 합니다. 멀쩡한 사람, 어떻게 보면 순진무구한 사람을 죄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고 말입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은 성품이나 말씀이 부드럽고 따뜻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중앙정보부에 한번 다녀오신 이후로는 완전히 과격하다 분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동일한 질문을 끝도 없이 하자, 악마의 성품으로 바뀌더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중학생 시절에 저의 사촌 형수님은 첩첩 두메산골에서 우리 마을로 시집을 오셨는데, 형수님의 부드럽고 친절한 말씨에 반해서 다음에 결혼을 하게 되면, 반드시 사촌 형수님 같은 분을 택하리라 결심했었습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어느 날 고향에서 형수님을 만났는데, 완전히 여전사와 변해서 많이 실망했는데, 세파(世波)가 그렇게 만들었다 하셨습니다. 세상은 죄를 짓게 만들고 죄 가운데서 살아가도록 필요충분조건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무서운 저주를 받을 것임을 오늘 말씀은 똑똑히 말씀하십니다. 슬픈 일이지만,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손을 찍어버리라 시며,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발도 찍어버리라 십니다.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눈을 빼어 버리라 하십니다. 죄를 짓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단호하게 심판하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죄를 짓게 하는 것들과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죄를 짓게 하지는 않았는지, 심각하게 돌아볼 시간이 아닌가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