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입장 : 결혼은 필수, 이혼은 반대. / 막 10:1-16.
묵상자료 8139호(2023. 8. 29. 화요일).
시편 시 17:1-3.
찬송 28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인 정 지용은 한동안 한국 문학사에서 지워졌었던 문인이었지요. 한국 전쟁당시 납북됐다, 월북 됐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이념을 배반했다는 명목만으로 모든 작품들이 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많은 작곡가들이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이기를 원했지만, 실제 곡으로 완성되기까지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지요. 일본 유학길에 오르던 정지용이 고향인 충북 옥천의 풍경을 떠올리며 쓴 그의 대표작 <향수> 역시도 말입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 섭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검정 두루마기를 즐겨 입고 동그란 안경을 썼던 시인 정지용이, 술자리에서 취기가 오리면 즐겨 낭송했던 시로 전하기도 합니다. 정 지용시 이 동훈 곡 <향수>이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8월 29일 방송>
2. “결혼과 이혼(1-12절)”과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다(13-16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불가/佛家에서는 네 가지 진리를 가르칩니다. 고집멸도가 그것인데, 첫째인 고제(苦諦)란 살면서 겪는 괴로움에 대한 인식으로 생로병사는 물론 만남과 헤어짐 등이라 합니다. 둘째인 집제(集諦)란 괴로움의 원인이 갈애(渴愛)라는 인식입니다. 감각적 욕망인 욕애(欲愛), 생존의 욕망인 유애(有愛) 등이라 합니다. 셋째인 멸제(滅諦)란 괴로움의 경지에서 벗어난 열반 또는 해탈에 대한 인식이며, 넷째인 도제(道諦)란 괴로움을 없애는 수행법으로 8정도(八正道)에 대한 인식입니다. 결국 인간의 모든 문제는 괴로움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고, 우선 단순한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먹는 것과 입는 것 그리고 삶의 내용을 최소화할 것을 가르칩니다. 인간관계도 최소화하기 위해서 가족을 떠나고 혼인도 피하고 홀로 사는 까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불가의 가르침과는 달리 성경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결혼제도까지 만드신 것은 물론, 오늘 말씀처럼 이혼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니, 핫한 논쟁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우선 성경의 가치관은 철저하게 갈등구조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혼에 이르는 과정에서부터 엄청난 갈등과 투쟁을 당연시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확실한 것은 불가의 가르침은 성경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든 없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성경과는 달리, 불가의 가르침은 결혼 생활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현실과 대결 구도를 갖고 있는 점이 큰 차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타락한 이후의 인간과 세상을 자랑하지도 않고 반대로 감추지도 않는 성경의 입장과는 현저하게 다른 점이라 하겠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점을 부정적으로 간주하고 출발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최소주의(단벌옷과 간소한 식사)는 삶의 기쁨을 송두리째 빼앗은 불행한 출발을 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결혼의 기쁨을 맛보지도 못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입니다. 물론 흔히들 말하는 대로 “결혼은 바보짓이다.” 든 지, “쓸데없는 짓을 했다.” 말들 합니다. “눈에 꺼풀이 씌운 때문이라.”고도 말합니다.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끼게 되고 후회함으로 증명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비록 이렇듯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많은 결혼생활이라고 하더라도, 결혼할 의무는 물론, 결혼하지 않는 것 보다는 결혼하는 것이 더 낫다며 적극적인 입장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혼이라는 아픔을 극복하려 했었던 모세 시대의 잘못을 비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바보짓 같고 쓸데없는 허망함을 맛보게 하는 결혼생활이라 할지라도, 결혼생활을 끝까지 참고 견디며 지속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훗날 부활 후의 천국 생활에서는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는(막 12:25, 마 22:30, 눅 20:35) 온전한 삶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결국 세상을 사는 동안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결혼제도의 유익이 반드시 그리고 훨씬 더 필요하다는 뜻이 아닐까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