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지금은 질문할 때 : 나를 죄와 죽음에서 구해주실 분은 누구이신가? / 막 11:1-11.

박성완 2023. 9. 2. 00:00

묵상자료 8143(2023. 9. 2. 토요일).

시편 시 17:14-15.

찬송 49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홍난파와 더불어 서양 음악을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뿌리내리게 한, 음악인으로 현제명을 꼽곤 합니다. 작곡가 현재명은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에,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즐겨 불렀던 성악도일 뿐이었습니다. 유학 생활 도중에 작곡가로 진로를 바꾸게 되지요. 이후 현제명만의 음악 어법이라고 할 만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귀국 후에도 작곡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칩니다. 당시에 사랑받았던 가곡들은 암울했던 시대상을 반영해 구슬프고 애조 띤 선율이 대부분이었습니다만, 현제명의 작품들은 달랐습니다. 밝고 화사했지요.

    “해가 눈을 감으면 저 별 떨기는 작은 눈들을 뜨고서 밤하늘을 빛낸다. 세월 오래 지나도 변치 않네, 별빛 사람아, 너의 마음도 별빛 같이 밝아라.”

    현제명의 곡들은 남성 성악가가 부를 때가 제격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악가였던 스스로의 목소리에 맞추어 작곡을 하게 되고 또 곡의 첫 번째 연주 역시도 늘 현제명 자신이었기에 아마 이러한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다, 짐작해 보게 되네요. <저녁 별>도 현제명의 대표곡이지요. <희망의 나라>로 처럼 현제명의 곡은 분위기가 밝고 보통 사람들도 쉽게 따라 부를 수가 있습니다. 지인들은 그 이유를 더 없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었던 현제명의 성품 때문이라 말하곤 했습니다. 곡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그대로 말이지요. 현제명 작사 작곡 <저녁별>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92일 방송>

 

2. “예루살렘 입성(1-11)”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사는 한편의 웅장한 서사시 같기도 하고, 구성이 치밀한 드라마 같기도 합니다. 이런 느낌은 시골 변방인 갈릴리를 주요 활동무대로 삼았던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출세가도(出世街道)를 달리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야고보 형제의 청탁이 자연스럽게(?) 불거져 나왔을 것이고 말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복음서 기자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21:1-11, 19:28-40, 12:12-19) 이 사건을 진중하게 취급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사들은 세상 사람들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각도에서 이 사건의 의미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군주들이나 출세자들의 행태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엊그제 저는 오래된 저의 대학 시절의 스크랩을 뒤적이다가 무악축제의 한 가장행렬을 취급한 <주간 중앙>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신과대학 학생들이 출품한 <예수 승천>이란 가장 행렬인데, 한국을 방문한 예수님이 한국 교회에서 쫓겨나 되돌아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972521일의 한국 개신교회는 빌리그래함 목사님의 부흥성회를 앞두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부흥과 열정에 흥미를 가지신 주님께서 한국교회를 보고 싶다하시는데, 정작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그런 예수님을 반기지 않고 내쫓았다는 아이러니한 속내를 고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취급하는 예루살렘 입성 기사는 어쩌면 이런 겉과 속이 다른 세태를 풍자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나귀 그것도 어린 나귀를 타고 가시겠다 하십니다. 왕의 행차(行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준마를 대신해서 초라한 나귀 새끼를 등장시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벗어 놓은 겉옷을 밟고 가시게 됩니다. 이는 왕의 행차에서는 붉은 카펫이 해당될 것입니다. 그리고 길가에 자라나고 있는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흔드는 초라한 소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걸어가고 계십니다. 이는 왕의 행차에서 단골로 준비하는 화려한 카드섹션과 깃발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들입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호산나라는 말은 시편 11825절의주소서 야훼여 구원을 주소서라는 구절에서 이호산나라는 말이 시작되었는데, 구약시대의 큰 축제 때 불렀던 노랫말이었습니다. 비록 왕의 행차와는 비교도 안 될 초라한 행차이지만, 어느 왕의 행차보다 더 중요하고 위대하다는 것을 빗대는 외침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길들여진 왕의 행차는 겉으로만 화려하고 준엄하지만, 실제는 아무런 능력과 권위도 없는 허깨비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이를 반증하듯 예루살렘의 소시민들은 우리를 살려주십시오. 우리를 구해 주십시오.”라는 말, 호산나를 진심으로 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가슴에 손을 얹고 질문할 때가 되었습니다. 나를 죄와 죽음에서 구해줄 분은 누구이신가?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