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善意)를 왜곡하는 뒤틀린 마음. / 막 14:1-11.
묵상자료 8154호(2023. 9. 13. 수요일).
시편 시 18:32-34.
찬송 22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전 세계 노랫말이 있는 수많은 노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제목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 뒤를 잇는 것은 바로 사랑의 노래라는 뜻을 지닌 연가고요. 지구촌 수많은 언어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표현을 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이야기되어지지 않은 부분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렇듯 유일한 감정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쉽게 가질 수 없고 보이지 않기에, 우리가 유난히 집중하는 것이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 호롱불 켜고 임 모습 엮던 지난날들 그리네. 칠흑 머리 빗고 오실까 하니, 셀 수 없는 날들만이 애태웁니다. 하얀 새벽 다가왔네. 매화꽃 향기 문풍지 서려, 임 오심을 알리네. 버선발로 나려 사립문 여니, 셀 수 없는 날들만이 애태웁니다.”
예스러운 노랫말과 곡조가 인상적이지요. 작곡가 김봉천의 연가는 이곡 외에도 또 하나 다른 시인의 시에 붙여진 곡으로도 있습니다. 통상 이곡을 김봉천의 <연가 1> 그리고 다른 곡을 <두 번째 연가>라고 하지요. 새로운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시인의 조금은 투박한 언어에서 애절한 감성이 묻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묵은 감정에서 전해져 오는 진심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서인숙 시 김봉천 곡 <연가> 였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9월 13일 방송>
2. “예수를 죽일 음모(1-2절)”,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자(3-9절)”과 “배반을 약속한 유다(10-11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오늘 본문은 4복음서가 모두 취급하는 내용입니다(마26:6-13,막14:3-9,눅7:36-38,요12:1-8).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귀한 손님에게 머리에 향유를 붓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시편 23:5에 보면, “주께서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는 구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잔치의 최고의 주빈(主賓)이라는 상징성도 갖고 있다 하겠습니다. 다른 평행귀인 요 12:3을 참고하면 이 베다니의 무명의 여인은 마리아였습니다. 아마도 나병에서 고침을 받은 시몬과 함께 동네잔치를 베풀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주석가들의 해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향유 사건이 몇몇 사람들에게는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분개했다고 하는데, 이유는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는데, 낭비해 버리고 말았다는 비난을 한 것입니다. 전통에 따른 일이었고, 선의에서 시작한 일이며, 그렇게 하고 싶고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사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비난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럴 경우 변명하는 일도,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일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사건에 대해서 분명한 해석을 해 주신 것입니다. 첫째는 이 일은 주님 당신의 장례를 위해 미리 행한 일이라는 점, 둘째는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일은 알려져서 기억될 것이라는 점, 셋째는 가난한 자들은 언제든지 도울 수가 있으니 우선권의 얘기라는 점, 넷째는 주님을 위해 행동한 여인을 괴롭히지 말라는 점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보고 실수할 때가 참 많은 세상을 살아갑니다. 정치적인 문제도 그렇고 사회적인 문제들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교회 지도자들이 말실수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 설교자들이 저지르기 쉬운 말의 실수는 지극히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볼 때 파생됩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 젊은 학생들 앞에서 설교하던 분은, 드라마 <가을 연가>의 촬영지를 비행기까지 대절해서 방문하는 일본 중년 여인들을 보고, “미친 여자들”이라고 혹평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내들을 후원하고 감싸주는 남편들까지 싸잡아 비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쓴 소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의미 없이 살아가는 아내가 처녓적 낭만을 되찾은 것이 너무도 반갑고 고마워서 시간과 돈을 내 주었다는데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삼사일언(三思一言)이란 말이 있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하라는 의미이며, 겉만 보지 말고 그 말에 담긴 의미를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만(약 3:2), 저와 같이 말하는 일을 주업으로 삼는 사람은 더욱 더 조심할 일입니다. 모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앞세워 마음에도 없는 말로 선심을 썼을 그 누군가가, 주님의 말씀에 얼마나 무안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음이 뒤틀리면 그게 마음 밖으로 나오기 마련이라 하니,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힘써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