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까? / 막 15:16-20.
묵상자료 8162호(2023. 9. 21. 목요일).
시편 시 19:5-6.
찬송 5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건너편 건널목에는 몇 가지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 할머니가 열심히 제자리 걷기를 하고 계셨는데, 무릎을 제법 높이 올리는 것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리고 팔도 가만히 두지 않고 열심히 아래로 축 늘어트린 후 운동선수들 마냥 몸 풀기를 하신다. 그리고 그 뒤 쪽에는 허리고 조금 굽으신 또 다른 할머니가 한 손엔 지팡이를 다른 한 손엔 무거워 보이진 않으나 천으로 만든 가방을 들고 계신다. 이제 신호등이 떨어져서 건널목엔 여러 사람들이 들어섰는데, 앞서 열심히 운동하시던 할머니는 뒤도 옆도 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건너가고 있고, 그 뒤를 따르던 등이 굽은 할머니의 걸음은 시간 안에 건널목을 건널지 걱정스럽게 느리다. 그런데 그때 오른편에서 아까부터 이 할머니를 주목해 보던 중년의 아주머니가 할머니에게 다가와서 천으로 만든 가방을 낚아채듯 들고는 할머니를 부축해서 건널목을 무사히 건너가셨다. 이 풍경을 보면서 마음을 툭 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운동은 왜 하는 걸까? 요즘 주변에는 친구며 지인들이 운동에 대해서 열심히 둘려주는 얘기들이 있다. 하루 만보걷기란던지, 일주일에 세 번은 가벼운 등산을 하라던지, 아침 식전에 아파트 세 바퀴는 돌아야 한다든지 하는 얘기들이다. 그래서 다시 물어본다. 운동은 왜 하는 걸까? 이런 질문은 우리들 삶의 모든 영역에 다 해당되는 것일 것이다. 왜 돈을 벌며, 왜 공부를 하고, 왜 교회를 다니며, 왜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가?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이럴 경우 굳이 행복이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건강하고 여유로우며, 넉넉하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일은 아닌 때문이다. 행복을 뒷받침하는 수천수만 가지 조건들 중의 하나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보람이라는 말과 가치 있다는 말에는 그리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때문이다. 앞서 차창에 비친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을 해 보였던 그 할머니가, 잠시 동안만이라도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면,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등이 굽은 지팡이를 쥔 이웃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말벗이 되어 그 위험한 건널목을 통과했더라면, 얼마나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운동을 한 것이 될까? 우리는 건강 자체가 행복이고, 학력자체가 행복이며, 부의 축적에서 행복을 찾는 우(愚)를 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때인 것 같다. <2023. 9. 18. 고산자로 로터리에서>.
2. “가시관을 쓰신 예수(16-20절)”을 읽었습니다. 에르네스트 르낭의 <예수의 생애>가 1863년 파리에서 출간되었을 때, 세상은 격찬과 매도(罵倒)로 들끓었다고 합니다. “예수가 살던 고장, 예수가 걸어가던 곳, 쉬던 물가, 그리고 그가 살던 고장의 지리와 주변의 역사 등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게 해 준다. 우리는 이 책에서 예수의 숨결을 들을 수 있다. 또 이 책을 통하여 예수를 사랑할 줄도 알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최명관 교수가 번역하였는데, <예수의 생애>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길을 안내한 책으로 크게 공헌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객관적이라는 말을 자주하지만, 실은 객관적인 것은 하나도 없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마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새가 소리를 지르는데도, 어떤 이는 울고 있다하고, 다른 이는 노래한다고 합니다. 울고 있다 하는 이는 그 자신의 마음이 슬픔으로 차 있어서 울고 싶은 심정인 것이고, 노래한다 하는 이는 그의 마음이 한 없이 기쁘고 즐거워서 노래하고 싶은 심정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일희일비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심정은 분명히 그런 상황이라고 말입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만, 성경은 신앙의 눈으로 읽을 책입니다. 과학의 눈으로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분석하고 평가하려는 마음이라면 처음부터 조용히 성경 읽기를 멈추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래야 그 마음이 평온해질 테니 말입니다.
총독 빌라도의 재판이 끝나자, 곧바로 형량대로 집행이 된 것입니다. 총독 휘하에 있는 근위대 병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고, 죄수에게 입히는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씌운 후 “유대인의 왕 만세!”라고 외치면서 경례를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갈대로 예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으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였습니다. 이렇게 희롱을 한 후에 자주색 옷을 벗기고 예수의 옷을 도로 입힌 후, 십자가에 못 밖으러 끌고 나갔습니다. 이런 절차는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훈련된 병사들이었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목회할 때 집사님 한 분이 교도관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포악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였을 텐데도 그렇게 착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말수가 적었고, 늘 웃는 얼굴이셨습니다. 어쩌면 현실과는 다른 거꾸로 사는 삶을 동경했을지 모릅니다. 80년도 초 안국동 현대그룹 본사에서 성경을 가르칠 때 만난 한 분은 중정의 직원이셨는데, 신우회 회원으로 매달 가난한 학생들에게 학비를 보조한다 하셨습니다. 신앙의 눈은 현실에서 받은 깨우침 때문에 생겼을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일을 하셨고, 빌라도는 빌라도의 일을, 그리고 병사들은 병사들의 일을 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