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거짓과 불의에 길들여지지 말기. / 왕상 17:1-24.

박성완 2023. 9. 27. 00:00

묵상자료 8168(2023. 9. 27. 수요일).

시편 시 20:7-9.

찬송 23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편안함을 경계해야 합니다.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입니다. 흐르는 강물은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는 추억의 물이며 어딘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입니다.” 신영복 선생의 말인데요. 우리가 강을 볼 때는 산과 들과 어우러진 하나의 풍경처럼 느끼지만, 그 풍경 속에서 강물은 계속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는 풍경이 평화롭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강물이 그 풍경 속에서 끝없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평화로운 주말 아침인데요.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맑게 흐르는 강물처럼 더 넓은 곳을 향해서 조용히 흘러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8927일 방송>

 

2. “엘리야가 가뭄을 예언하다(1)”, “엘리야와 까마귀(2-7)” 그리고 엘리야가 사렙다 과부에게 기적을 베풀다(8-24)”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도봉산 중턱에 가면 까마귀들과 까치들이 떼를 지어 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몸집으로 봐서 까마귀가 더 크고 용맹해서 까치들은 피해 다니곤 하지만, 숫자가 늘어나면 싸움이라도 걸 듯 까마귀 주변을 빙빙 돌면서 위협을 가하는 것 같습니다. 마침내 까마귀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니까요. 아마도 먹이 싸움 혹은 영역 싸움일 것 같습니다. 등산객들이 모여서 점심을 먹는 자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니까요. 제가 까마귀와 까치를 데려온 까닭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까마귀에 대한 인식과(凶鳥) 성경에서의 인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까마귀는 길조(吉鳥)로 출현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 비가 멈추고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 보내 정보를 제공받습니다(8:6-12).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도망자 신세가 된 엘리야에게 음식을 날라다 주는 임무를 수행하는 까마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5-6). 그래서 저는 성경의 소개를 따르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까치보다는 까마귀를 길조로 생각하게 되었고, 우연히 까마귀를 만나면 무슨 좋은 소식을 들으려나 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소위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는 일은 불행한 일입니다. 사회적으로건 신앙적으로건 일반 사람들은 언제나 실세를 따르기에 왕따가 될 수 있습니다. 권력을 쫓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살아있는 권력에 맞장을 뜨려는 철부지(?)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철부지 한 사람의 이름은 엘리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디셉 사람인 그는 아합왕을 찾아가서 저주스러운 말을 전합니다. 앞으로 여러 해 동안 비는 물론 이슬조차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왕의 미움을 사서 도망자의 신세가 됩니다. 그는 그릿 시내로 피신하여 까마귀가 날라다 주는 음식을 먹고 지내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릿 시내도 메말라서 물조차 마실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저는 1983년 여름 갈멜산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엔 엘리야의 석상이 있는데, 엘리야의 눈빛이 부리부리하니 매섭게 생겼는데, 발밑엔 바알의 제사장을 밟고 있고, 오른 손에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그렇게 무서운 용사처럼 조각해 놓은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불의와 싸우려면 투사가 되어야 하는구나 하고 말입니다. 크리스천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의미는 마냥 순하고 따뜻할 수는 없습니다. 거짓과 불의에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세상을 살리고 어리석은 인생들을 구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때 배웠습니다. 불의한 세상에선 크리스천이 투사가 될 이유를 말입니다. 요즘 저는 길들여짐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난에 길들여지면 가난 그 자체를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되며, 불의에 길들여지면 독재자까지도 숭배하게 된다고 합니다. 아합에 길들여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일시적인 평안과 배부름입니다. 엘리야에 길들여져야 하겠습니다. 항구적인 평화와 기쁨 그리고 감사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