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는 물론, 연약하기만 한 인생들. / 왕상 18:41-19:8.
묵상자료 8171호(2023. 9. 30. 토요일).
시편 시 21:6-8.
찬송 37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정지용 시인은 뛰어난 문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지용에게 문학적인 재능만큼 뛰어났던 것은, 다른 사람의 문제를 알아보는 능력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문장]지의 시 부분 추천 위원을 맡고 있던 당시, 정지용의 추천을 받은 시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을 <청록파>라는 이름으로 등단시킨 것이 가장 유명하고요. 또 이 상과 윤동주의 이름이 알려진 것도 정지용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등단한 시인이 또 있습니다. 바로 시인 박남수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잊으리라고 생각했지요. 세월이 흘러가면 잊어진다고 생각했지요. 낙엽 떨어져 낙엽 밟으며, 못 잊어 못 잊어 우옵니다. 한 밤이 이리 길고 긴 줄은, 사무칠 줄은 몰랐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잊으리라고 생각했지요. 세월이 흘러가면 잊어진다고 생각했지요. 낙엽 떨어져 낙엽 밟으며, 못 잊어 못 잊어 우옵니다. 한 밤이 이리 길고 긴 줄은 사무칠 줄은 몰랐습니다. 가신 길 되돌아서 바람 날리듯 돌아오소서.”
시인 박남수는 1939년 청록파로 불렸던 세 명의 시인과 더불어,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을 합니다. 생의 허무를 평생 시의 주제로 삼았을 만큼, 자유와 순수 삶의 경중에 대한 시인의 고뇌는 작품을 통해 이어졌지요. 대표작으로 손꼽혔던 연작시 새는, 인간의 탐욕이 한순간 우주 속에 얼마나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는가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박남수의 시는 매우 조심스럽고 섬세한 방법으로, 선명하면서도 안정된 하나의 이미지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섬세하고 고운 언어의 선택이 돋보이는 글이지요. 박남수 시 김연준 곡 <안타까움> 들으셨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9월 30일 방송>
2. “가뭄이 끝나다(41-46절)”과 “엘리야가 호렙산으로 들어가다(1-8절)”을 읽었습니다. 3년 가뭄이 끝나고 메말랐던 땅에 단비로 적시게 되자, 아합은 다시 본색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잡혀 살던 아합은 이세벨에게 갈멜산에서 일어났던 참극(?)에 대해서 낱낱이 고해바칩니다. 다혈질인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전갈을 보냈는데, 자신의 예언자들을 죽인 엘리야를 내일 이맘때까지 반드시 죽이겠다는 최후통첩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천벌도 감수하겠다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엘리야는 두려움에 떨면서 최남단에 위치한 브엘세바를 거쳐 하룻길을 더 들어간 광야로 피신합니다. 그리고 싸리나무(개역판에선 로뎀나무) 덤불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기도는 나약한 우리들처럼 “죽여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곤 싸리나무 덤불 아래에 누워 잠들었습니다. 갈멜산에서 수천 명이 주목하는 기도대결에서 보여주었던 그 위엄과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소심한 사나이로 바뀐 것일까요? 그 다음 장면을 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천사를 보내어 불에 달군 돌에 구워낸 과자와 물 한 병을 머리맡에 두고 흔들어 깨웁니다. “일어나 먹으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엘리야는 음식을 먹고 물도 마신 후, 다시 누워 잠에 빠집니다. 그러자 천사가 먹을 것을 들고 다시 와서 흔들어 깨우며, “갈 길이 고될 테니 일어나 먹으라.”고 권합니다. 그렇게 해서 엘리야는 힘을 얻어 밤낮 사흘 길을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창에서 제법 큰 교회인 창남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1년간 봉사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감명 깊게 배우고 불렀던 성가곡이 <엘리야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후렴부의 마지막 구절은 “엘리야의 하나님, 엘리야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었는데, 이 성가를 부를 때마다 갈멜산에서 승리했던 엘리야가 제 곁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당당하고 호기롭던 엘리야가 평범한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죽고 싶다.”라고 말했던 이유는 놀랍게도 배가 고파서였던 것입니다. 물론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입니다만, 제가 깨달은 것은 육신이 약해지면 신앙과 신념도 그렇게 여지없이 허물어지고 말 수 있다고 말입니다. 배가 고플 때, 그리고 작은 몸살감기 같은 질병에 여러 날 누워 있을 때, 한 없이 초라한 우리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랍고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너무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를 통해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셔서 기운을 돋우어 주신 것입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도 신앙도 깃들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최근 한 친구가 건강에 적색등이 켜진 건 아닌가 걱정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식욕이 어떤가를 물었습니다. 다행히 그런대로 먹는다 했습니다. 그래서 먹고 싶은 것을 가리지 말고 먹어보라 권했습니다. <80세의 벽>을 쓴 일본의 정신과 의사 와다 히데키씨는 80세가 넘으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권합니다. 암 세포도 치매도 80세 이후에는 왕성하게 활동하지 않는다면서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