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 왕상 21:1-16.
묵상자료 8173호(2023. 10. 2. 월요일).
시편 시 21:12-13.
찬송 17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은 익으면서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푸른 열매가 점점 커지면서 그저 크기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도 풍성하게 잘 여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이겠지요. 익으면서 자라는 감의 모습은,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성장입니다. 성장 안에 성숙의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 있지요. 성장과 더불어 차근차근 외적인 성숙도 함께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 탄탄하게 집을 바라보는 기분이겠지요. 마음에 든든하게 울타리가 둘러지는 기분이 들기도 할 테고 말입니다.
가을이면 시들었다가 이듬 해 새로 싹을 틔우는 여러 해 살이 풀도, 작년의 일을 기억할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식물의 생장 속도에 비하면, 사람의 일생에는 참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요. 물론 생의 초반에는 사람도 성장을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하지만 대개 성장이 거의 완료된 스물 이후의 시간은 그렇지가 않지요. 그래서 그 사람의 생을 정의 내리는 데는, 스물 이후의 시간이 의미가 큰 듯합니다. 스스로 이루어낸 성숙의 부피가 그 시간의 대가로 남아 있을 테니까요. 혹여 지금까지 제대로 해 내지 못했다고 해도 기회는 또 오겠지요. 우리가 눈감는 순간까지도 말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0월 2일 방송>
2.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다(1-16절)”을 읽었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이야기는 세속 권력이 얼마나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아합은 사마리아에 있는 자신의 별궁 근처의 포도원이 늘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그 포도원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소유주 나봇을 찾아가 거래를 하였습니다. 팔든지 아니면 다른 포도원과 바꾸든지 하자고 말입니다. 그런데 나봇은 자신의 선조들이 대대로 물려준 포도원이라며 거래조차 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아합 왕은 마음이 상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속앓이를 하다 앓아눕기까지 합니다. 이를 본 왕후 이세벨이 자신이 해결하겠다며 왕에게 음식을 먹게 합니다. 이세벨의 생각은 매우 지능적인 범죄를 실행합니다. 먼저 밀서를 써서 옥새로 봉인한 후 나봇의 거주지 시의회에 보냅니다. 내용은 이랬습니다. 단식을 선포케 합니다. 그리고 무뢰배 두 사람을 내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욕했다고 증언하고 고발케 합니다. 그리고 약식 재판을 거쳐 나봇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이게 하는 것입니다. 나봇은 변명조차 할 여유도 없이 하나님과 왕을 욕한 중죄인으로 즉결 처단을 당하게 되었고, 그 결과를 보고 받은 이세벨은 이를 아합 왕에게 알립니다. 이렇게 해서 왕은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으로 포도원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역시 역사는 힘을 가진 자를 편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불의한 일은 우리가 사는 현대에서도 아주 자주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법이 지엄한지라, 사람의 목숨은 쉽게 처리할 수는 없으니까, 이세벨식 방법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을 빼앗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권력에게 충성하는 기업가들을 동원하기란 누워서 떡먹기처럼 쉬운 일이고, 거짓 증인을 세우는 일도 그렇습니다. 훗날 진실히 밝혀질 때는 적어도 수 십년이 지날 것이고, 사람들의 기억은 가물가물할 때이니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단방법을 다 동원해서 금싸라기 땅까지 대토로 제시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마침내 못이기는 척하며 거래에 응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룬 재화는 근본적으로 불의의 재물인지라, 그 생명력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시대 조류에 편승하는 게 합법이고 자본주의 상도의상 하등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주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복음 사업을 위해서라면, 신앙윤리는 잠깐 덮어둘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나 성도인 우리는 세상과 다른 몸짓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그게 잘 분별되지 않습니다. 거룩하게 산다는 참된 의미는 이렇듯 세상과 다른 몸짓으로 산다는 것이며, 세상과 다른 생각으로 사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여전히 코비드에 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제 주변에도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 그리고 가족을 잃은 분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과연 거룩하게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세상 가치와 다른 구별된 모습으로 살기를 진심으로 원해야 하겠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힘써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