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눈으로 이해해야 할 성경 말씀. / 왕하 6:1-23.
묵상자료 8182호(2023. 10. 11. 수요일).
시편 시 22:29-31.
찬송 34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온 마음을 집중할 때가 있습니다. 생을 송두리째 흔들 만큼 그 어떤 가치에도 우선한다고 말할 만큼, 사랑이란 중대하고 커다란 것이라고 정의(定義) 내리는 순간이 있지요. 그 뜨거운 마음만이 사랑인 건 아니라는 조언은, 그 순간 바람보다도 가벼워집니다. 그 어떤 사랑의 맹세도 할 수 있고, 원한다면 이 세상 무엇도 되어주고 싶은 강열한 마음. 일부러 그러한 마음을 내는 것으로는 조금도 참아내지 못할 만큼 커져버린 마음, 그 순간 가장 눅진한 진심이 되어버리지요.
“오, 그대여, 나 이 봄의 바람이었다가, 그대 속눈썹 흔드는 그리움이고 싶네. 오, 그대여, 나 이 가을에 나의 낙엽이었다가, 그대 가슴에 떨어지는 노을이고 싶네. 그대 두 눈에 이슬꽃 피어나면, 바람의 날개로 곱게 닦아주는, 나 오직 바람이었다가, 그대 두 눈을 지키는 등불이고 싶네. 그대 밤하늘에 외기러기가 날으면, 나뭇잎 엽서에 별자리 그려보는, 나 오직 낙엽이었다가 그대 밤을 지키는 별들이고 싶네. 오, 그대여, 나 이 봄의 바람이었다가, 그대 속눈썹 흔드는 그대 그리움이고 싶네. 오, 그대여, 나 이 가을의 낙엽이었다가, 그대 가슴으로 떨어지는 노을이고 싶네.”
시인의 노랫말은 가장 열렬한 순간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어느 젊은 날의 밤, 쓰고 지우고 지우고 쓰기를 반복했던, 사랑의 연서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살다보면 상대를 향한 부푼 마음만이 사랑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그 지난 시간의 열렬했던 마음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겠지요? 사랑의 감정이란 본래 그 정점을 가지는 법이고요, 또 지나고 나면 가장 치열했던 순간의 감정은 이어받기 힘든 법이니까 말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깨닫고 합니다만, 하지만 사랑의 눈이 멀게 되면, 그러한 마음은 잘 조절이 되질 않지요. 그 치열했던 순간의 감정, 생애 다시 한 번 또 다른 정점이 찾아온다고 해도, 그러한 일은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김병종 시, 이철웅 곡 <바람이었다가 낙엽이었다가>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0월 11일 방송>
2. “잃어버린 도끼를 찾다(1-7절)”과 “엘리사가 시리아 군대를 사로잡다(8-23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명으로 엘리야에 의해 호렙산에서 후계자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왕하 19:16-21), 그는 엘리야가 승천하는 것을 목격하였고(왕하 2장), 여호람,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등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기간에 많은 기적들을 행하여, 경제적으로 또는 질병에 처한 백성들을 구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은 그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데 권위를 보증해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일화의 하나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는 이곳저곳에 선지자 수련생들이 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하루는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청을 하였는데, 수련원의 거처가 너무 좁아서 조금 더 큰 수련원으로 증축을 해야 하겠는데, 요르단으로 가서 들보 감을 베어다가 증축에 쓰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언자 엘리사도 동행할 것을 간청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요르단 지방에서 나무를 자르게 되었는데, 한 수련생이 들보감을 찍다가 도끼를 물에 떨어뜨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도끼는 빌려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도끼가 떨어진 지점을 묻고, 그 자리에 나뭇가지를 꺾어 그곳에 던지자 도끼가 떠올라 찾은 것입니다. 온통 무거운 쇠로 만들어진 도끼가 나뭇가지에 의해서 물위로 떠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는 구약에서 뿐 아니라 신약에서도 예수님이나 베드로 그리고 바울에 의해서 숱한 기적이야기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많은 현대인들은 성경이 없던 옛날에는 그런 기적 이야기가 다반사였다고 한다든지, 아니면 그런 기적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상상 속에만 있는 허구라든지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현대 과학문명을 배운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성경은 과학적인 사고방식 곧 이성이나 논리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우리의 신앙을 배양시키기 위해서 쓴 믿음의 책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 고해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거짓말로 꾸며낸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적어도 성경을 읽는 사람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기록을 읽을 때, 이미 믿음으로 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이성이라는 도구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사고방식과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은 믿음이라는 도구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최초로 이야기한 사람이 바로 4세기의 힙포의 교부 어거스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라 신앙의 책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신앙의 책인 성경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고 기를 쓰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