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실종된 시대 한 복판에서. / 렘 36:27-37:2.
묵상자료 8202호(2023. 10. 31. 화요일).
시편 시 27:10-12.
찬송 32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그 사실은 다분히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더 늦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그 차이를 좁힐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말이지요. 시인 조병화는 본래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을 하던 이학 도였습니다. 당시로써는 구하기 힘들었던 괴테나 헤르만 헷세의 책을 몇 번이고 탐독할 정도로, 문학을 사랑했습니다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전공은 실용학문을 택할 수밖에 없었지요. 광복 후 제 자리를 찾지 못했던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청년 조병화는 쉽게 마음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글로 옮기는 일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깊은 의미를 주는 지 깨닫지요. 가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추억>은, 바로 그러한 시기에 쓴, 시인 조병화의 두 번째 작품이었습니다.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들이 사라진 겨울 바다에.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가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조병화의 시 <추억> 역시 여러 작곡가가 시에 곡을 붙여 작곡을 했습니다만, 그 가운데서도 김성태가 작곡한 이 곡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시인이 지은 본래의 시는 1절에 해당되는 부분이 전부지요. 이후 작곡가인 김성태가 가곡으로 옮기면서 작곡가는 시인에게 2절을 위한 노랫말을 부탁합니다. 아직은 잊기 힘든 추억을 지우기 위해서 바닷가를 거니는 이의 쓸쓸한 뒷모습이 연상되는 곡이지요. 작곡가는 곡 머리에 소박하게 라는 말을 덧 붙였습니다. 곡의 중간 역시 피아노나 피아니시모를 사용해, 연주자에게 강열하지 않고 여리게 표현해 줄 것을 거듭 부탁하기도 했지요. 추억이란 그런 것이지요. 그저 담담한 마음으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병화 시 김성태 곡 <추억>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0월 29일 방송>
2. “바룩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받아쓰다 2(렘 36:27-37:2)”을 읽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을까? 어떤 학생이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일까? 가정교사를 여러 해 하면서 수도 없이 생각해 봤던 질문입니다. 그래서 얻은 대답은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일.”이었습니다.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제 스스로를 위해서 크게 도움을 받은 대답이기도 했습니다. 그 실천 방법으로 가능하면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일이었고, 내용을 맥락적으로 요약 정리한 것은 물론, 선생님이 강조하는 내용을 그 중요성에 따라 별표를 해 두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적중하였습니다. 별표가 셋인 경우는 반드시 기본 시험문제였고, 별표가 하나인 경우는 변별력을 위해 출제하고 있었습니다. 50년 전의 스크랩북에는 교수님이 시험 채점 후 선물로 주신 시험지가 몇 장 붙어 있는데, 구약 교수님은 99점을 주셨고, 신약 교수님은 A+를 주셨습니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는 1일 교사가 되어 특강을 하였을 때, 그 얘기를 잊지 않고 전해 주었습니다. 1996년부터 2015년까지 20년간 주일 공예배에서, 부모님을 따라 온 어린이를 위한 5분 설교를 하였는데, 설교대 옆에 앉은 아이들과 눈을 맞춘 것이었는데, 그 어린이들 가운데 서울대학을 비롯하여 대부분이 유수한 대학에 합격하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은 아이들이 좋은 열매를 거두는 것은 예외가 있을 리 없다고 말입니다.
장황스럽게 옛날 얘기를 꺼내는 저의가 뭐냐고 물으시겠습니다만, 비단 학교 교육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교육에서도, 그리고 가정 교육에 있어서도, 이보다 더 중요한 비결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류는 수천 년을 살아오면서 입으로는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원한다 말하면서도, 그 비결을 따르지 않고 역주행하는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옹고집을 부린다는 말입니다.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의 선례를 남겼다고 창세기는 고발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철부지에 불과한 인간의 선택은 순종의 삶이 아니라 불순종의 삶이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일꾼인 예레미야와 서사 바룩은, 불순종의 아이콘으로 등장한 여호야김이 갈기갈기 찢어 불태워버린 하나님의 신탁을 보고 망연자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예레미야로 하여금 신탁을 받아 서사 바룩에게 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두루마리에는 여호야김의 미래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었습니다. 여호야김의 후손 중에서는 다윗의 왕좌를 계승할 사람이 없을 것이며, 여호야김의 시체는 무더운 대낮에도, 추운 밤에도 밖에서 뒹굴고 있지만 누구 한 사람 거두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시민들과 유다 사람들에게까지도 온갖 재앙에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불순종의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거스르고, 학생은 선생의 말을 듣지 않으며, 백성은 지도자에게 반항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