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대표 시드기야. / 렘 38:14-28.

박성완 2023. 11. 3. 00:00

묵상자료 8205(2023. 11. 3. 금요일).

시편 시 28:4-6.

찬송 46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정갈하게 바른 창호지의 문,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는 사랑채 안에는, 문방사우를 펼쳐둔 중년의 선비가, 두 손으로 정성을 다해 먹을 갈고 있는 모습. 시인 이 근배는 바로 그런 모습, 그러한 마음으로 시를 쓴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유생이었던 할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문인이 되었다고 자처했을 정도로 말이지요. 시인의 그 마음은 벼루에 대한 애정도 담겨 있습니다. 오래된 벼루를 찾고 묵향을 만드는 것으로, 시인은 시심을 키워나갔습니다. 시인의 시심은 그래서 작은 것에서도 생의 큰 의미를 찾아냈던, 우리네 선비의 마음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이름을 가진 것이 이름 없는 것이 되어. 이름 없어야 할 것이 이름을 가진 것이 되어. 길가에 나와 앉았다. 꼭 살아야 할 까닭도, 목숨에 딸린 애린 같은 거 하나 없이. 하늘을 바라보다가, 물들다가, 바람에 살을 부비다가, 외롭다가, 잠시 이승에 댕겼다가 꺼지는 반딧불처럼, 고개를 떨군다. 뉘엿뉘엿 지는 세월 속으로만.”

    시조 시인 이 근배는 정 완용 이 우종 등과 함께 우리 시조의 맥을 잇는 문인들로 꼽히고 있습니다. 길가에 핀 들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글로써 사람들을 이끄는 진정한 문인으로써의 마음이, 시인의 글에서 느껴집니다. 들꽃의 생과 소멸에서, 가슴 시린 애상이 전해지지요. 시가 지닌 언어의 함축, 유려한 언어의 흐름. 아이러니 하게도 잘 짜여진 시를 평가하는 것은, 우리가 형언할 수 있는 언어만으로는 오히려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참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근배 시 윤 상열 곡 <들꽃>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113일 방송>

 

2. “예레미야가 웅덩이에서 살아나다2(14-28)”을 읽었습니다. 예루살렘 왕궁을 지키는 근위대의 뜰에는 물 없는 우물이 있었습니다. 한 때는 물이 제법 많이 고여서 우물로 사용하였는데, 어느 날 부턴가 더 이상 물이 솟지도 고이지도 않아서 우물의 자격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요즘은 그 까닭을 과학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는데, 이른바 수맥이 끊겨버린 때문입니다. 저는 예레미야가 이 근위대 뜰에 있는 물 없는 우물에 갇히게 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 요셉을 떠올리곤 합니다. 요셉은 꿈쟁이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로 꿈을 잘 꾸었고, 그 꿈 때문에 부모님에게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0명의 형들은 이 꿈쟁이의 예사롭지 않은 꿈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광야에서 양을 치는 형들에게 먹을 것을 전해주러 갔던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물 없는 우물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집트를 왕래하는 장사꾼 이두메인들에게 팔려가게 됩니다. 이렇듯 요셉과 예레미야의 공통점은 물 없는 우물에 갇히는 공통된 경험이라 하겠습니다. 요셉은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점이 미움 받은 원인이 되었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왕과 백성들에게 전해주었다고 해서 미움을 받은 것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는 세 번째 출입구에서 예레미야를 비밀리에 만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는 바벨론과 이집트의 위협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신탁을 받은 예레미야를 불러 왕 자신 뿐 아니라 나라를 누란의 위기에서 건질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생명을 보장받은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받은 신탁을 말씀드립니다. 그 초점은 바벨론 왕이 보낸 장군에게 항복할 것을 말합니다. 그러자 왕은 이미 바벨론에 합류한 유다지도자들이 두렵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충언을 거절해서 이런 결과를 가져온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왕을 안심시킵니다. 그들에게 왕을 넘겨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반대로 왕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왕과 왕궁에 남아있는 이들 모두가 끌려가고 나라는 잿더미에 앉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왕은 자신을 비밀리에 만난 사실을 감추려고 하였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두려워한 것이 무엇인지 짐작가는 대목인데, 자신의 정책이 실패했음을 감추고 싶어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바벨론에 항복하는 일인데, 이런 신탁을 들은바가 없다고 감추려는 의지는, 현실적으로는 바벨론에 끝까지 항거하겠다는 표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는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시드기야는 어리석은 모든 인간들을 대신하고 있다 생각됩니다. 자신의 얄팍한 잔꾀를 부려서 눈앞의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자세 말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를 때까지는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시드기야가 가진 신앙이란 하나님의 뜻보다는 제 자신의 뜻이 더 합리적이고 현명하다는 어리석음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