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살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들. / 애 1:1-12.
묵상자료 8209호(2023. 11. 7. 화요일).
시편 시 29:6-8.
찬송 48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늦가을 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창을 흔들고 지나는 밤바람이 제법 무섭습니다. 오늘 입동입니다. 입동쯤이면 옛 사람들은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서 초가집 지붕에 이엉을 두툼하게 얹곤 했다고 하지요. 가늘 하고 힘없는 지푸라기에 불과합니다만, 모아서 엮으면 이엉은 마치 두툼한 이불을 얹어 놓은 듯 방안에 찬바람이 드는 걸 막아주었습니다. 입동의 날씨로 조상들은 그해 겨울의 날씨를 점치곤 했다고 합니다. 바쁜 일손을 모아서 서로의 지붕에 이엉을 얹어주었던 그 마음처럼,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면서 시작된 추운 계절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신문을 보거나 텔레비전을 커는 일이 좀 두렵습니다. 연일 기운 빠지는 뉴스를 자주 접하곤 하지요. 힘든 경기 때문인지, 모두들 어깨가 한 치씩은 내려가 있는 듯도 보입니다. 언젠가 이 보다 더 힘들었던 시절엔 김장을 해서 묻어 둔 커다란 독 하나와, 처마 밑에 쌓아둔 검은 연탄만 봐도, 든든하던 때가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 언젠가 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불행이 가장 크고 힘든 것처럼 느끼기 마련이지요. 지금이 가장 밑바닥이라면, 다시 한 번 웃기 위해서, 또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지 걱정이긴 합니다. 고단한 시간은 늘 더디 지나가는 것이 또한 걱정이기도 하고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1월 7일 방송>
2. 예레미야 애가가 예레미야 다음에 위치하는 때문에 가끔 후기 예언서가 아닌가 오해를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 헬라어 번역본 <70인 역 구약성경>이 예레미야 뒤에 애가를 둔 이후로 번역 성경들도 그 전통을 따랐다고 합니다. 본래 예레미야 애가는 책명이 없었으나, 탄식어 “아, 아!”가 세 곳 1:1, 2:1, 4:1에 나오는 것을 보고 책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애가는 다섯 개의 시로 구성되었는데, 본장(1장)에서는 멸망하고 파괴된 예루살렘을 희망을 잃고 비통하게 우는 과부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환희와 영광에 가득 차 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주어진 현재의 절망적인 상태를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잃고 대부분의 지도자들과 쓸 만한 기술자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 버린 모습이 기둥 같은 남편을 잃은 과부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을 것입니다. “흐르는 눈물을 끝이 없고”,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들조차 위로하여 주지 않고”, “이 나라 저 나라에 얹혀살자면 어디인들 마음 붙일 곳이 있으랴.” 들리는 것은 통곡소리 뿐이며, 사제들의 입에서는 신음소리요, 처녀들의 임에서는 한숨소리뿐이구나.“ 는 구절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너무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때는 순례자들로 발소리가 요란하던 시절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애가는 이런 저주와 슬픔에는 야훼 하나님께 반항하고 거스르기만 한 죄악이 있었음을 소환합니다. “시온의 영화는 어디로 갔는가?” “백성들이 원수의 손아귀에 붙잡혔는데도 아무도 도와 줄 이 없다.”고 탄식합니다.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은 죄악의 도성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절망의 순간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바라보자고 권합니다. “야훼여, 이 비참한 모습을 보십시오. 이 백성이 알뜰히 아끼던 것을 원수가 모조리 손아귀에 넣었습니다.” 그 잘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밥을 구걸하는 신세가 되고 값비싼 패물을 먹을 것으로 바꾸며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신세가 된 것을 주목하게 합니다. 그런데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남의 다리를 긁듯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했다 생각하는데도 가난과 질병 그리고 가슴한번 펴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원망하는 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언제나 한결같았습니다. “알고 짓고 모르고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옳으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매 주일 귀가 따갑도록 외우는 구절을 안겨드렸습니다. 제일은 우리 하나님은 한 분 야훼시니,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란, 생각이나 일에서 하나님께 우선권을 드리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팔을 안으로 굽히는 대신 팔을 이웃을 향해 뻗는 그런 자세로 살아가는 일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