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무엇을 위해 깨어 기도해야 하나? / 애 2:8-15.

박성완 2023. 11. 8. 00:00

묵상자료 8210(2023. 11. 8. 수요일).

시편 시 29:9-11.

찬송 39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지 않아도, 또 이렇다 할 대꾸도 없습니다만, 자연은 그 광활함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힘들 때, 도심을 벗어나서 산을 오르곤 하는 것은, 아마도 그러한 이유이겠지요. 시야를 툭 트이게 하는 너른 벌판이나, 산이 주는 무언의 포용은, 그 어떤 말이나 위로보다 더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무언의 포용, 자연은 언제나 그 너른 마음을 베풀 준비를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산아, 사랑하는 내 고향의 산아. 종내 너를 두고 나는 간다. 내 마음의 무게이고, 내 넋의 크나큰 날개여, 두 팔로 내 목을 얼싸안고, 안타까이 나를 울리는 사랑아. 산아, 내 고향의 산아, 잘 있거라. , 내가 죽어서도 돌아올 보금자리여. 어디메 묻혀다가도 되돌아와 묻힐 내 무덤이여. 눈 익은 메 뿌리 멧부리여. 살뜰한 골짜기 골짜기여. 언제 돌아온단 기약도 못한 채, 종내 나는 떠나가누나. 잘 있거라. 잘 있거라. 잘 있거라, 산아. 사랑하는 내 고향의 산아.”

    깊은 격정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오페라의 아리아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곡이 주는 감동은 크게 다가오지요. 붉은 용암이 솟아나오는 화산 폭발을 보고 있는 것처럼, 곡은 열정적입니다. “내 넋의 크나 큰 날개라 시인이 표현한 것처럼, 산은 크고 너른 포용으로 변함없이 우릴 맞아주는 듯 하지요. 남성성악가들이 즐겨 부르는 우리 가곡 가운데 하나로, 주저 없이 꼽히는 곡입니다. 신 응철 시 신 동수 곡 <산아>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118일 방송>

 

2. “둘째 애가(8-15)”을 읽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이집트나 바벨론과 같은 적국의 군대나, 아니면 마귀나 원수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엄청난 손해를 보거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통해서 심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분별하시고, 마땅히 그 책임을 물으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는 최후의 심판만이 아니라, 현세적으로도 심판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세적인 심판은 최후의 심판을 예비하는 중간 과정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사랑의 채찍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좀 더 특이한 문제가 화근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거짓 예언자들 때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거짓 환상을 품게 만든 지도자들 때문에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들이 눈이 멀고 귀가 닫혔던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땅히 들어야 할 임박한 재앙을 알려주고, 회개하고 제정신을 차리게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얼마 전 국민일보에는 미국과 독일의 교회들 가운데는 맥주 집과 스포츠 센터로 개조되는 뉴스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시대적인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던 시절에는 기도할 제목들이 넘쳐났었는데, 지금은 너무도 평온하고 넉넉하기 때문에 교회를 찾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교회는 건강하고 넉넉해지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처럼 변질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른바 부흥하는 교회들의 특징은 기복신앙으로 가득 찬 설교와 기도로 도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뿌리박힌 죄악에 대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권력자와 재벌가와 친하게 지내는 교회 지도자들을 비판해야 합니다. 그 까닭은 명백합니다. 권력자와 재벌가는 정의와 공정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인 때문입니다. 불의와 부정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정의를 외쳐야 할 교회가,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듯 감싸 안아주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무고한 양민들을 무도하게 총칼로 죽인 살인자에게 넙죽 절하며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유명 목사들이 한 둘이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병들고 썩어빠져 있는데, 어떻게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될 수 있을까 절망적입니다. 머지않아 화려한 하나님의 성전이 맥줏집으로 바뀔 것이 예견되는 것은 저 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엇을 위해 깨어 기도해야 합니까? 거짓과 불의에 대항하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이 있겠습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