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길을 찾아라. / 암 5:1-15.
묵상자료 8240호(2023. 12. 8. 금요일).
시편 시 34:17-19.
찬송 41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현재에 좀 더 집중하자, 이러한 말을 하곤 합니다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매일 3천여가지 정도의 행동을 우리는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네요. 사소하게는 계단을 오르거나 음식을 계속해서 입에 넣는 일, 때로는 말을 하는 것까지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매일 반복 합니다. 그 모든 것을 매 순간 집중해서 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일상은 이미 일상이 아니겠지요. 물론 일상이나 무의식 그 어떠한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일도 세상엔 존재하기도 합니다. 왜 라는 말을 붙일 수 없는 단 하나,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요.
“창 밖에 이는 바람/ 임이 온 자취인가/ 나 홀로 그리움에 단잠을 깨고/ 임의 모습 못 잊어 창가에 서면/ 그대는 이 밤도 단꿈을 꾸고 있나/ 내 마음만 외로이 끝없이 흐르네/ 두견새 우는 소리 님부르는 소리인가/ 나 홀로 이 밤도 그리움에 지새운다/ 우수수 낙엽 지는 뜰앜에 내려서면/ 세상은 고요히 꿈속에 잠기고/ 그리움만 달빛타고 끝없이 흐르네”
누군가가 특별한 이유를 묻게 되면,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사랑은 맹목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상대에게만 한 없이 베풀거나 그만을 내내 기다리는 이유를, 어쩌면 스스로 역시도 모르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마음을 따라가다가 한, 글쎄요,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달을 뿐이겠지요. 그에 대한 마음이 깊다는 사실을 느낄 겁니다. 곡에 배어나오는 정서가, 박문호 시인의 글에 작곡한 가곡 <임이 오시는 지>와 무척이나 흡사한 듯도 여겨집니다. 엄 원용 시 김 하조 곡 <임 생각>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2월 8일 방송>
2. “이스라엘은 죽었다(1-3절)”, “하나님을 찾아야 산다(4-6절)”, “야훼 송가(7-8절)”, “이스라엘의 죄상(9-13절)” 그리고 “살 길을 찾아라(14-15절)”을 읽었습니다. 짧은 구절들이긴 하지만 5단락으로 된 말씀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와 다섯째 단락을 택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죽는 길 보다는 사는 길을 택해야 하는 때문입니다. 요즘 핫한 주제는 긍정의 힘 혹은 절대 긍정 같은 말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즐거움 보다는 고통이, 사랑보다는 미움이, 평화보다는 다툼이 더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이런 이분법적인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즐거움이 모자라고 즐거움을 위한 노력이 부족할 뿐이지 고통이 대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결핍을 채우려고 힘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뿐, 미움이 대세는 아닌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중심 주제는 즐거움이나 사랑 그리고 평화일 뿐, 고통이나 미움 그리고 다툼이 대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 조상 아담의 타락으로 고통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세상을 희망하며 일해야 마땅하다고 말입니다. 어린 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살 길을 찾아서 일해야 하겠다고 말입니다. 둘째 단락에서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첫 번째 살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살고 싶으냐? 나를 찾아오너라.”고 말씀하십니다(4절). 흥미로운 것은 베델로도 가지 말고, 길갈로도 가지 말고 브엘세바로도 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곳들에는 우상숭배의 신전들이 있었숩니다. 이는 마침 예루살렘 성전을 암시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현존인 말씀과 약속을 듣고 따르라는 뜻입니다. 즐거움과 사랑 그리고 평화를 해치는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무시하고 불순종한 것이었습니다.
다섯째 단락에서 살 길이란,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일이라 말씀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이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 중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만 좋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을 소홀히 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무참하게 냉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향 친구 중에 강백/講伯 스님이 한 분 있는데, 자신들 불가에서는 기독교인을 포함해서 모든 대중들에게 필요에 따라 밥도 먹여주고 잠도 재워주는데, 기독교인들은 시주승/施主僧에게 “우린 교회 다녀요.”하면서 문전박대를 하니 너무한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해서는 전도는 고사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할 기회마저 잃어버릴 테니 말입니다. 한국 땅에 기독교를 가져온 이들은 이미 정착해 있던 타종교의 토양에서 양해와 배려를 받았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슬람교가 대다수인 튀르키예나 동유럽의 나라들에는 원조물자를 아낌없이 베풀면서, 가까이 있는 타종교인 들에게는 온갖 악담을 쏟아 붓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웃 사랑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정립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세상 살면서 힘쓸 일들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