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인가? 하나님을 우롱하는 예배인가? / 암 5:16-27.
묵상자료 8241호(2023. 12. 9. 토요일).
시편 시 34:20-22.
찬송 5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원해서, 국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 위를 떠도는 영혼”이라 불리는 바다 집시, 모켄족의 이야기인데요. 오랫동안 말레이 반도를 유랑하며 지낸 모켄족은 지금은 미얀마 남부의 메로구이 제도 주변에서 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모켄족의 언어에는 “원하다” 라는 말이 없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가장 절실하고 필요한 순간에, 그 기회를 뒤로 미루지 않았던 때문이었습니다. 원하다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지금 당장 모든 걸 가질 수 있다면, 무척 행복하겠지요. 하지만 대신, 미래가 지닌 가능성이나 희망은, 어쩌면 큰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다 집시인 모켄족은 식량으로 쓰는 물고기조차, 필요할 때 먹을 만큼만 잡는다고 합니다. 미래를 위해서 저장해 둔다거나, 팔기 위한 목적으로는 물고기를 잡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배가 고프면 물고기를 사냥해 배를 채우고, 또 그 이후에는 그 시간에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찾아서 하는 것이 모켄족의 생활인데요. 그러한 그들의 삶을 지나치게 즉물적이다, 비난 할 수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날 때부터 현재의 내가 가장 원하는 일에 집중했다면, 우리의 삶도 모켄족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겠다 싶기도 하고요. 때때로 우리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너무 먼 미래를 보고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간절하게 원하거나 바라는 것이 없는 삶이, 과연 어떨까 상상해 봅니다. 그렇다고 생의 열정이 사그라진 허망한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미래에 대한 욕심을 거세한 삶이라 말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원하는 것이 없다면 마치 중세의 구도자처럼, 우리는 순하게 주어진 삶 안에서 매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대신 하루를 이루고 있는 작은 순간들에, 좀 더 몰입할 수도 있겠지요. 내 눈과 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세상의 선물들에 감사하면서 말입니다. 생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음 생에서는 그렇게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네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2월 7일 방송>
2. “심판 날이 다가왔다(16-20절)”과 “겉치레뿐인 종교를 규탄함(21-27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우리들 기독교 신앙은 기다림으로 시작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런 기다림은 준비라는 중요한 과정을 갖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초림주를 기다리고, 성탄절을 기다리고, 성회수요일을 지나 사순절을 지키고, 세례를 기다리고, 부활절을 기다립니다. 이런 기다림의 과정들은 크리스천으로써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줍니다. 인생이라는 우리의 삶은 때론 지루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매우 절박하기도 합니다. 동문수학했던 친구들과의 모임에 참석하면서 팔십 줄에 들어선 때문인지 건강얘기가 주요 화제가 되곤 하는데, 건강에 좋다는 음식과 운동 등이 단골 메뉴처럼 오릅니다. 그런 다음 하루를 돌아보는 저녁 시간이면 조금은 씁쓸하기도 합니다. 보람 있는 시간보내기와는 많이 모자란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우들이 던졌던 질문들이 하나 둘 떠오르게 됩니다.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말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요, 둘째는 이웃사랑이라고 가르치셨는데, 문제는 그 구체적인 실천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일인가를 생각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에 관심을 갖도록 힘쓰라 권고합니다. 반드시 물질적인 참여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10일간 기도하기입니다.
어느 시대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만, 오랜 신앙생활에서 오는 권태감이나 형식주의는 피할 수 없는 문제일 것입니다. 의례적인 혹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의 행태 말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주목했던 당시 신앙인들의 모습을 맥락적으로 옮겨보겠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말씀 “나는 너희의 순례절이 싫어 얼굴을 돌린다.” 안식일 성수나 십일조 지키는 것들이 하나님께는 역겨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치는 번제물이 조금도 달갑지 않고, 시끄러운 노랫소리도 집어 치우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십일조나 제물을 보면 좋아하실 것이라고, 무슨 노래든 열심히 눈물까지 흘리며 부르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이 역겹고, 달갑지 않고 보기도 싫다고 말씀하십니다. 드리는 예물이 보잘 것 없고 추한 것이거나 정성이 부족한 때문일까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들이 아닌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정의롭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며, 둘째는 우상 숭배를 일삼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의 삶을 살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우롱하며 위선을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