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당신의 집 성전에 계십니다. / 학 2:1-9.
묵상자료 8248호(2023. 12. 16. 토요일).
시편 시 35:20-22.
찬송 5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인들은 오래전부터 나무나 꽃, 길가의 풀 한 포기까지도 모두가 누군가의 마음이라 여겨 왔던 듯도 합니다. 특히 우리의 시인들은 한 잎 한 잎 지지 않고 꽃송이처럼 툭 떨어져 지는 동백 같은 꽃에 비극적인 운명이나 사랑을 담아 왔습니다. 상사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먼저 돋아난 잎이 지고난 후에야, 꽃잎이 삐죽이 나오는 상사화를 시인들은 살아서는 결코 만나지 못하는 비극적인 사랑으로 그려냈습니다.
“긴긴 밤 애타는 그리움으로/ 행여나 님의 소리인가 바람결의 잠이든가/ 잎새 떠난 그 자리에 피어나는 안개처럼/ 풀 잎 지고 꽃이 피니/ 눈물꽃 상사화라네/ 붉게 젖은 눈망울에/ 노랗게 타버린 가슴이여 가슴이여/ 이룰 수 없는 사랑 애처로움에 흐느낀다 흐느낀다/ 너의 고운 몸매 가련한 몸부림은/ 기다림인가 외로움인가 두려움인가/ 무심한세월 애타는 그리움으로/ 지고 피는 상사화여/ 오늘도 선운산 산새는/ 너를 두고 슬피 울며 나는 구나”
꽃이 지는 일은 흔하지만, 가을의 낙엽이 아니고서 잎이 지는 것은 참 드뭅니다. 상사화는 잎이 먼저 나고 진후에, 비로소 꽃대가 올라오지요. 길어진 꽃 대 끝에 진분홍의 꽃이 피면, 그 모습은 마치 분홍족대를 쓴 여인의 모습과도 비슷했습니다. “긴 꽃대는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길어진 목과 같다.” 시인은 비유하곤 했습니다. 언젠가 저 남녘 고사에서 봤던 상사화 밭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이 재성 시 이 재삼 곡 <상사화>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2월 13일 방송>
2. “새 성전이 먼저 성전보다 영화롭다(1-9절)”을 읽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축은 적어도 유대인들에게는 감격 이상의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서울의 어떤 교회처럼 더 큰 성전을 짓기 위해 멀쩡한 교회당을 무너트리고 좀 더 큰 성전을 짓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라의 패망과 함께 산산이 부서지고 불에 타 버린 하나님의 전을 70년이 지난 다음에야 다시금 건축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은 유대인의 삶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삶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의미를 되새길만할 것입니다. 평생을 교회 사택과 전셋집을 전전하던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된 집을 갖게 될 때의 감격이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집을 70년이 훌쩍 지난 다음에 다시 건축하게 되었다면 말입니다. 다리오왕 재위 2년 7월 21일, 예언자 학개는 유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그리고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일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옛 성전과 새 성전이 별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입니다. 이 질문의 속내에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유의미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행여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총독 스룹바벨에게 힘을 내라고 명령합니다. 까닭은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성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할 때, 하나님의 성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이 머물겠다는 약속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더라도 두려워말라고 말입니다. 오랜 기독교 역사에서 이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전에 머물고 계심은 등잔에 켜진 불을 의미했습니다.
종종 질문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고 말입니다. 그때 마다 혹자(或者)는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다고 대답하기도 하고, 하나님은 온 세상 어디에나 계신다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혹자는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마음에 계신다고 대답합니다. 모두 맞는 대답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대답은 하나님은 당신의 거처인 성전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성전의 촛불을 켜두고 있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온 세상 어디에나 계신다거나, 믿는 자들의 마음에 계신다는 말이 틀리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대답들은 실제적인 면에서 실효성이 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실 때에만, 온 세상에 어디에나 계신 분이기도 하고, 또 그 때에만 우리들 마음에 계시기도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면, 다른 두 가지의 대답은 근거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신앙을 배울 때부터 가졌던 출발점이 되는 때문입니다. 그 출발점을 무의미하게 만든다면, 다른 그 어떤 대답도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