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생활의 훈련장, 지금 여기에서의 삶. / 슥 8:9-17.
묵상자료 8255호(2023. 12. 23. 토요일).
시편 시 37:1-3.
찬송 2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옛 사람들은 동짓날,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한다고 믿었습니다. 점점 짧아지던 낮의 길이가 동짓날이 지난 이후에야, 다시 서서히 본래의 길이로 돌아가기 때문이었지요. 더불어 자연의 기운 역시, 그 흐름을 좇아간다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땅은 아직 얼어있지만 낮의 길이가 길어지는 만큼, 땅 아래에선 만물이 소생할 준비를 한다고 믿었지요. 동짓날,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곤 하던 따끈한 팥죽 한 그릇, 그 팥죽 한 그릇의 성스러운 힘을 빌려 좋은 기운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동지 팥죽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상들은 동지를 일컬어서 작은설이라 부를 만큼, 설 추석 단오와 함께 중요한 명절로 쇠곤했습니다. 오죽하면 동지 팥죽을 먹어야만, 제대로 된 한 살을 더 먹는 거라는 옛말이 있을 정도였지요. 하얗고 존득존득한 새알심을 뚝뚝 넣고, 걸쭉하게 끓인 팥죽은 겨울 별미가운데 하나이지요. 뜨거울 때 설탕이나 소금을 넣어 호호 불어 먹든가, 아니면 조금 식은 후에야 먹든가, 역시 이맘 때 팥죽이 가장 맛있는 듯합니다. 요즘은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는 풍경이 무척 귀해졌지요. 그 때문일까요? 팥죽을 넉넉하게 쑤어서 이웃과 나누고, 서로의 길운을 축원했던 조상들의 마음이, 유독 정겹게 느껴집니다.
현재의 기상청과 비슷한 조선시대의 관상감은, 동짓날 새 달력을 만들어 궁에 올렸습니다. 나라에서는 그 달력에 옥쇄를 찍어서 모든 벼슬아치들에게 나누어 주었지요. 연말에 달력을 선물하는 우리 풍습은 여기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최근 달력 인심이 많이 박해진 탓인지, 변변한 달력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하지요. 하지요. 이렇게 작은 것 하나에서도 전해지는 경기가, 벌써부터 걱정스럽게 느껴집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2월 21일 방송>
2. “새날을 약속하심(9-17절)”을 읽었습니다. 연말연시가 되면 왠지 모르게 몸과 마음을 가다듬게 됩니다. 아마도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반성과 함께 좀 더 바람직한 삶을 살고 싶다는 몸과 마음의 반응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새롭게 산다는 것은 자주 가질수록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새해를 맞을 때는 물론 어떤 특별한 일들을 겪게 될 때도 그렇습니다. 손자가 입대 신고를 하러 찾아왔을 때, 대학에 입학하고 인사를 왔을 때, 결혼을 앞둔 조카가 찾아왔을 때, 당사자가 아닌 제가 새로운 다짐 같은 것을 하고 싶어졌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를 갖는 이들을 통해 선한 영향력이 미친 때문일 것입니다.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캐나다의 의사 윌리엄 오슬러(1949.7-1919.12) 경이 예일대학 특강에서 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말 같아 옮깁니다. “이미 죽어버린 과거지사나 아직 오지 않은 희미한 미래를 차단하고, 확실한 오늘에 충실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매일 매일이 새로움이 되도록 말입니다. 오늘 묵상은 야훼 하나님께서 절망 속에서 살던 과거와는 전혀 딴 판인 새로운 희망의 삶을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성전의 주춧돌을 놓는 이날, 예언자를 통해 전해진 야훼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힘을 얻으라고 말입니다. 품삯을 못 받고 헛일을 하였고, 원수들 등쌀에 바깥출입도 힘들었으며, 형제끼리도 싸움뿐이던 시절은 끝났다고 말입니다.
새날의 특징은 평화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가꾼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먹게 되고, 농사진 곡식으로 밥을 지어먹게 되며, 여러 민족에게 천덕꾸러기 신세로 욕이나 먹었으나 이제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그러니 조금도 겁을 먹지 말고 힘을 내라고 말입니다. 조상들의 잘못으로 야훼 하나님이 화를 내시고 재앙 속에 살게 하였으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셔서 잘해 주시기로 하셨으니 겁내지 말라 하십니다. 그리고 당부의 말씀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들, 이웃에게 거짓말 하는 것이나, 굽은 재판을 하는 것이나, 이웃을 해칠 생각이나, 거짓 맹세로 속이는 일은 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새날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평화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말씀을 다시 듣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싸우지 말고 우애 있게 살아라.” 9남매를 낳아 기르시던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가난도 공부도 건강도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아껴주고 배려하는 평화로운 생활이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으셨던 어머니는 평화의 세상을 살아야 천국의 삶을 익히는 것임을 내다 보셨던 것입니다.
3. 동지 팥죽을 먹기만 해도 행복입니다. 새알심은 맞춰 드셨습니까?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