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니피카트(Magnificat)가 전하는 넓고 깊은 뜻. / 눅 1:39-56.
묵상자료 8259호(2023. 12. 27. 수요일).
시편 시 37:13-15.
찬송 37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에는 그렇게 된 원인과 이유가 필연적으로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과 이유만으로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더 많이 존재를 하지요. 지금 비극적인 상황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 시작이나 원인도 비극적이었던 것이 아니고, 또 지금의 상황이 좋다고 해서, 그 시작도 바르고 좋은 것만은 아니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손해를 보기도 하고, 뜻밖의 행운을 만나기도 하지요. 지금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우리의 생을 숙연하게 만듭니다.
“이슬만이 제 모습으로 단장한 이른 새벽/ 아직 만나지 못한 님 그리워 스러지지 못한 샛별 하나/ 그대와 나 사이 너무 멀어/ 않을 수 없는 그대 바라보다/ 빈 가슴 쓸어내리며 쓸쓸히 쓸쓸히 피어난 꽃/ 1년에 단 한번 만나는 견우직녀가 부러운 꽃/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리워 그리워/ 그대 향한 목마름으로/ 빨갛게 타 버린 가슴/ 강낭콩보다 더 붉은 가슴으로 피어난 꽃/ 새벽하늘 스러지지 못한 저 별이 내 님인가/ 이슬 먹은 얼굴로 바라만 보다 지쳐버린 꽃이여”
이탈리아에서는 매년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음악회를 엽니다. 음악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그 순간만큼은 늘 잊고 있었던 그들의 존재를 기억해 내지요. 방금 들은 <상사화>는 2008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2차 대전 희생자를 추모하는 음악회에서 연주된 곡입니다. 이탈리아어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제목으로 연주되었지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평화로운 일상이 지구의 전쟁을 겪어내야 했던 모든 사람들의 희생 덕분임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박 원자 시 정 애련 곡 <상사화>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2월 25일 방송>
2.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다(39-45절)”과 “마리아의 노래(46-56절)”을 읽었습니다.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는 서로 간에 많은 유사점과 동시에 차이점을 보이는데, 그래서 다른 성서보다 더 많은 연구가 뒤따랐습니다. 그 결과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신약개론서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각 복음서는 그 첫 마디에서 그 특징을 말하고 있는데, 마태복음서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며 교과서의 성격을 띠고 있고, 마가복음서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복음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누가복음서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기독교의 역사(내력)을 밝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서는 인도주의 정신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 그리고 여인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에 대한 유명한 일화(눅 10:25-37)는 셰익스피어까지도 극찬한 말씀입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본문을 일컬어 막니피카트(Magnificat/ 마리아 송가)라고 부르는데, R. 브라운이 쓴 책 <뜻밖의 소식>을 읽고 받았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2천 년 전의 시대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말할 나위도 없고, 요즘 시대에도 상상하기 힘든 가히 혁명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막니피카트는 먼저 하나님의 은총이 얼마나 깊고도 위대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찬양할 마음이 가득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기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비천한 자신을 살피셔서 온 세상 사람들이 복된 자로 부르게 된 것은 하나님의 넘치고 넘치는 은총 덕분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고백하는데, 교만한 자들을 내팽개치셨고, 힘자랑하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시고, 대신 배고픈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으로 배불리시며, 부자들을 빈 손으로 내쫓으셨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조상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약속의 민족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사랑으로 지켜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입니다. 몇 구절 되지 않는 노랫말이지만, 듣기가 거북해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부와 권세의 대물림처럼, 가난과 질병까지 대물림하는 세상을 천지개벽하듯 뒤집어엎기를 바라는 내용에 이럴 수는 없다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마음속에 절절히 담겨있는 속내는 빈부귀천 남녀노소가 평화롭게 살아갈 미래를 소원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가 잘 사용하는 말, 많이 배운 것으로 무식한 이들을 등쳐먹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주고, 열심히 단련한 힘센 몸으로 연약한 이들을 붙들어 주며, 은혜로 많이 가진 재물로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있는 뜻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