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성령 잉태설에 관해서. / 마 1:18-25.
묵상자료 8262호(2023. 12. 30. 토요일).
시편 시 37:22-24.
찬송 11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년 12달이라는 단위들은 살아가는데 좀 더 편리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지요. 이러한 단위가 없었다면, 삶은 무척 커다란 하나의 순간이었을 겁니다. 헌데 그러한 시간의 단위가 생겨나고 그 안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의 마음이 변하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시간의 단위들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 느껴지는 허망함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그렇지만 결국 우리는 편리를 위해 그 모든 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마음이 헤집어지는 걸 경험해야만 하지요.
“보이지 않는데/ 다들 간다고 하네/ 어디서 쉬는지 어디게 종착역인지/ 바람도 불어오고 눈비도 오고 계절도 또다시 돌아오는데/ 눈부시게 푸르른 젊은 날/ 찬란하던 꽃들/ 그리운 사람들 따라간/ 돌아올 길도 모르는/ 보이지 않는 형상들/ 머리를 산발한 바보 까막눈/ 오늘밤 너 가는 길목 어귀마다/ 보이지 않는 덫을 놓아버리고 싶다/ 세월아!”
한해의 마지막 날 밤, 그 심란한 마음을 곡은 알아주고 있는 듯합니다. 하루가 지나면 새 날이 밝아오고, 하나의 계절 뒤엔 또 다른 계절이 오지요. 그렇지만 생의 어떤 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도 합니다. 시인은 그래서 시간의 길목 어귀에 덫이라도 놓고 싶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겠지요. 그대도 지나면 아쉬운 것이 있다는 건, 그만큼 생의 열정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모든 걸 눈썹 아래에 두고 묵묵히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만, 아직은 쉽지 않을지라도 온 마음을 다해 살아내고 싶습니다. 박 원자 정 덕기 곡 <세월, 너 가는 길목 어귀마다>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12월 31일 방송>
2.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18-25절)”을 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용어는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께서 세상의 구세주(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뜻으로 신앙 고백적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의 몸을 입으셨는지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나사렛 동네에 살고 있었던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한 사이로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마리아가 아이를 잉태한 것입니다. 그래서 법대로 사는 요셉은 이 황당한 사실에 조용히 파혼할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 권고하며, 그 태중에 있는 아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것이니, 그가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는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서 기자는 이 이야기를 이사야 7:14에서 예언한 말씀의 성취로, 동정녀가 잉태할 아들은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잠에서 깬 요셉은 천사의 권고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고 지내다, 아들을 낳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불렀다는 내용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이해가 불가능한 이야기를 신화/神話로 일축해 버리곤 합니다. 석가모니나 마호멧과 같은 종교의 창시자들이나 위인들 중에는 이런 신화 같은 출생의 일화들이 존재해 왔기에 가볍게 스쳐지나가곤 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큰 소득 여부를 떠나서 이 주제, 하나님이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나심이라는 화육/化肉의 비밀에 대해서 묵상하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기원 특히 출생의 비밀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신비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경향입니다. 그 첫 번째 신비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누구나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로 갈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 신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X,Y 염색체가 성별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등 생명의 신비에 대해서 많은 궁금증이 풀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은 몇 가지 곁가지들에 불과할 뿐, 생명의 근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생명의 근원에 대한 비밀을 신비에 두자는 것입니다. 우리들 이성은 이해를 갖게하는 설명의 도구가 되는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성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은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역은 신앙에 맡기는 것이 지혜롭다 하겠습니다. 마리아의 동정 잉태 이야기는 성령에 의한 것이라는 성경말씀에 신앙으로 수용하는 것이 첫째 답이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