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주현절에 배우는 세상을 비춰야 할 복음 정신. / 엡 3:1-12.

박성완 2024. 1. 6. 00:00

묵상자료 8269(2024. 1. 6. 토요일).

시편 시 38:4-6.

찬송 25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렸을 때 가훈이나 좌우명을 알아 오라는 것이, 방학 숙제였던 적이 있습니다. 굳이 없는 것을 만들면서까지 숙제를 해야 했던 것이 당시로써는 의아해 했습니다만, 지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여러 번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마음이 가는대로 선택하면 그뿐이겠습니다만, 마음조차 하나의 길로 가지 못하면, 선택의 순간은 늘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하지요. 좌우명은 그럴 때 가장 절실합니다. 다른 사람이 조언해 줄 수 없을 때, 다른 사람의 조언조차 구할 수 없을 때, 좌우명은 스스로에게 큰 충고가 되지요. 힘들 때 마다 부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어떠한 노래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 마음에 스며드는 고운 노래 소리는, 고개 너머 먼 곳에서 복사꽃 향기 따라 온 거라지요. 오늘도 그 향기 그윽이 남아 언덕 너머 바라봅니다. 내 마음에 스며드는 임의 노래 소리는, 강바람 꿈길 따라서 코스모스 향기 따라 온 거라지요. 지금도 그 추억 마음속에 그리며 언덕 너머 바라봅니다.”

    작곡가 윤 상열이 1972년 직접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여 완성한 곡입니다. 맑고 화사한 노랫말과 곡의 분위기가 동요나 가곡 어느 것으로도 손색이 없는 곡입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아 밖을 내다보면서나, 늦은 밤 컴컴한 골목길을 걸어 들어오면서 절로 흥얼거려질 듯 친숙한 멜로디이지요. 꽃향기를 따라서 고운 노랫소리가 실려 온다는 노랫말처럼, 이 곡을 나지막하게 흥얼거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의 무게는 조금씩 덜어질 듯합니다. 윤 상열 작사 작곡 <내 마음의 노래>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16일 방송>

 

2. “이방인을 위한 바울의 사도직(1-12)”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주현절입니다. 교회력에서 주현절은 이집트 곱틱 교회가 지켜오던 그들의 성탄절이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훗날 교회력을 통일하면서 로마 가톨릭교회가 지키고 있던 1225일의 성탄절과 곱틱 교회가 16일에 지키고 있는 또 다른 성탄절이 겹치는 것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곱틱 교회의 성탄절을 주현절(주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의미)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두 교회가 모두 다 기독교 신앙을 갖기 전에는 동지 이튿날을 태양신의 생일로 섬기고 있었고, 개종 후 곧 바로 예수님의 탄생일로 대치했던 역사가 같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방 세계의 사도로 자칭한 바울 사도의 활동을 말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현절에 매우 적합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회는 유대교의 틀 안에 갇혀 있을 수 없었음을 최초로 간파한 인물이 사도 바울인 것을 드러내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기원한다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섯 차례나 반복 사용하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른바 심오한 계획이라는 말입니다. 개역 개정판에서는 비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유대인 뿐 아니라 모든 인생들이 다 복음을 들어야 하고 모두가 다 구원받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이런 바울의 영향이 저 유명한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의 말씀으로 강조하는 마 28:19-20이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적어도 신약성경은 모두 바울의 영향을 받은 초대기독교회의 문서들인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오한 비밀이란 유대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발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회의 출발은 성경을 보는 눈을 달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뜻의 초점은 오직 유대인만을 복 주시고 구원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그를 축복의 통로로 삼으셔서 온 세상을 복 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강조점을 달리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현대판 선민(選民)인 크리스천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심오한 계획에 눈을 돌려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세계 선교의 선두 주자였던 사도 바울의 정신을 계승할 과제가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이 복된 소식을 유대인이나 크리스천에게 제한하는 것은 엄청난 과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21세기에 이르도록 유대교나 기독교인 중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려는 폐쇄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한 간호사는 빗발치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다.” 말했는데, 그 내용은 아이를 낳다가 죽어가는 수많은 산모들이 눈에 밟혀서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돕고 싶다 말했습니다. 이런 복음의 힘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자양분이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타종교나 타문화를 무력으로 정복하려 했던 전투적인 기독교회가 아니라, 사랑과 섬김으로 마음과 정신을 흔들어 깨우는 기독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