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 출 17:1-7.
묵상자료 8271호(2024. 1. 8. 월요일).
시편 시 38: 10-14.
찬송 34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해석을 하고 또 풀어나갑니다. 고난이 닥쳤을 때, 누군가는 제 자리에 주저앉거나 도망가 버리지만, 또 누군가는 제 키를 훌쩍 넘는 벽을 기를 쓰고서라도 넘어버리지요. 하나의 문학 작품에 대한 해석 역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똑 같은 시를 두고서 누군가는 정치적이라 읽어내고,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연시/戀詩 라 말을 하기도 하지요. 하나의 시에 여러 명의 작곡가가 곡을 붙였지만, 저마다의 색깔을 지니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 겁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시를 선정할 때, 항상 상위(上位)에 꼽히는 작품이 바로 김춘수의 <꽃>입니다.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의미를 되새길 때, 이만한 고백도 없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지만 김춘수 시인은 고백을 위한 연시로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보편적이 원리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심취해 있던 당시,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민한 흔적이 바로 이 시 <꽃>을 탄생시켰지요. 그렇지만 시인의 의도가 어떠한 것이었든 시는 읽는 사람이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면 그 뿐이다. 시인은 호쾌히 말하곤 했습니다. 김 춘수 시 임 준희 곡 <꽃>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9년 1월 7일 방송>
2.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다(1-7절)”을 읽었습니다. 출애굽의 여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430년간이나 노예처럼 살았던 한 민족이 자유와 해방의 새 삶을 찾아 나선 장정/長征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처음 가졌던 각오나 다짐 그리고 원대한 꿈은 광야의 모래 바람과 뜨거운 햇살 앞에서 서서히 사그라들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는 목마름 앞에서 참을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불평을 모세에게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힘든 일 앞에서는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했을 테니 만만한 것이 지도자입니다. 목말라 죽게 되었으니 어쩔 작정이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기세가 마치 모세를 죽일 듯 했다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갑니다. 모든 문제들의 해답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처지를 알고 계셨고, 홍해의 물을 둘로 갈랐던 그 지팡이를 들고 호렙의 바위 앞에 서게 합니다. 그리고 그 바위를 치면 물이 터져서 백성들로 마시게 하라 하십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 하나님께 대들었다 해서 그곳 이름을 므리바라 불렀고, 야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를 시험했다 해서 그곳 이름을 맛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무엇입니까? 목마르도록 내버려둔 하나님의 무관심입니까? 아니면 어련히 때가 되면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실 것인데 그걸 참지 못하고 대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 없음입니까? 그도 아니면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예방하지 못한 모세의 불찰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살이는 문제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문제들을 대하는 태도 여하에 따라서 원망과 불평할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인생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그도 아니면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이 해결책을 모색하는 의견을 나누 기회가 되기도 하고, 마지막으로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가 되기도 합니다. 여러 형제자매를 가진 제가 고향 집에서 갖는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하게 되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문제 해결 방안에서 배운 것입니다. 매번 불평 일색인 사람도 있고, 책임질 희생양을 찾는 사람도 있고, 나름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도 하고, 극히 드물긴 하지만 기도하자고 제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수준 낮은 불평하는 것과 지도자를 탓하는 것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이런 방법들은 문제 해결에 치명적인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소용돌이치는 물결 속으로 빠져드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전혀 희망 없는 진흙탕 싸움에 말려든 때문입니다. 훌륭한 지도자인 모세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할 수 있었고, 모세가 택했던 방법처럼 하나님께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주 저를 찾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제 의견을 듣고 힘을 얻어 문제를 풀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졸업하고 안수를 받은 후엔 자기 고집대로 하려 했습니다. 여섯 달이나 참다 손절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필요 없을 테니까요.
3. 주현절 후 7일간은 성탄절과 같이 특정본문을 읽도록 규정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