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양들을 인도할 최종 목적지. / 마 9:35-10:4.

박성완 2024. 5. 21. 00:00

묵상자료 8405(2024. 5. 21. 화요일).

시편 시 67:1-4.

찬송 44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크리스천 학생과 선/을 수행하는 학생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어느 무더운 날, 한 남자가 갈증으로 헐떡이며 길가에 누워 있었습니다. 두 명의 선 수행자가 왔고, 그 중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불쌍한 사람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마스터의 수수께끼를 기억합니까? 그 답은 부족한 게 없다.’입니다. 그냥 갑시다.” 이어서 두 명의 크리스천 학생이 왔습니다. 한 사람이 외쳤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을 줍시다. 그가 기력을 회복하면, 우리가 삶의 수수께끼를 푸는 방법을 가르쳐 줍시다.”

킴 마이클즈, 예수님의 선문답, p.158.

 

2. “목자 없는 양(35-38)”열 두 제자를 부르시다(1-4)”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초원에서 두 명의 목자가 인도하는 양떼를 차창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양들을 앞서 걸어가는 목자는 지팡이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고, 맨 끝의 양들을 따라가는 목자는 지팡이를 들고 양들을 몰고 있었습니다. 오랜 동안 함께 생활해온 듯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어느 아프리카 선교사가 들려준 돼지 떼를 몰고 가는 목자는, 곁길로 빠져 달아나려는 돼지 한 마리 때문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계속 긴 회초리를 맞으면서 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했습니다. 목자를 잘 바라보고 따라가는 양들은 아무 것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을 인도하는 목자는 물을 마실 시내가 어디에 있는지, 배부르게 뜯어먹을 푸른 초장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바로 그곳으로 양들을 데리고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아프리카의 돼지 떼 중에서는 제 멋대로 풀밭을 찾을 수 있다고, 시원한 시냇물이 흐르는 곳을 찾아낼 자신이 있다고 건방을 부리는 돼지는 쉬지 않고 채찍을 맞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역사를 보면 좋은 지도자 좋은 교사 좋은 임금이 있었던 시대는 백성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악정을 펴는 시대에는 백성들이 온갖 시련으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목자 없는 양떼를 상상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런 양떼를 향해서 삶에 시달리며 배고파 허덕이는 불쌍하기 짝이 없는 무리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국의 신앙소설가 A. J. 크로닌은 <천국의 열쇠>에서 두 지도자를 등장시킵니다. 프랜시스 치셤과 안셀모 밀리입니다. 프랜시스 치셤은 천국이란 종교적철학적 의미를 훌쩍 넘어인간이라면 누구나 질문하고 사유할법한 ‘인간다움이나 ‘바른  같은 보편적인 의미를 찾아 번민하고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치셤과는 전혀 다른 출세 지향적인 안셀모 밀리는 교단의 정치가들에게 연줄을 대고 일사천리로 주교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 둘은 같은 신학교를 다녔고, 평생을 신부로써 살아가지만, 과연 천국의 열쇠를 가진다면 누구의 손에 들려질지를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며칠 전 국민일보에는 어느 대형 교단에서 총회장 선거운동에서 금품 수수로 문제가 생기면 원 스트라익 아웃을 고려한다고 합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한국의 개신교회 총회장 선거는 금품 선거라는 말이 풍성했습니다. 신부의 길, 목사의 길이 어떤 길인지를 배웠을 터인데도, 현실 세계는 시중에서 일어나는 동일한 문제들이 있어왔던 것입니다. 기복신앙의 문제라고만 치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문자적 신앙 근본주의 신앙이 초래한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습니다. 천국은 저 하늘 건너편에서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시작되어야 할 인간답고 바른 삶이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