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이유를 찾아낸다 면. / 마 13:36-43.
묵상자료 8423호(2024. 6. 8. 토요일).
시편 시 68:28-29.
찬송 53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상한 나라 엘리스로 유명해진 루이스 캐럴은 영국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으나, 내성적인 성격과 말더듬이 때문에 신자들 앞에서 설교하기를 두려워해서, 평생 설교대에 서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가 남긴 한 마디는 오늘도 많은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있다. 노력만 하면 어떤 일에서든지 배울 점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이유를 찾아내려고 힘쓴다. 타당한 이유일 수도 있고,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올바른 이유를 찾아내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희망씨, 가슴에 새기는 한 줄 명언, p.78.
2. “가라지 비유 설명(36-43절)”을 읽었습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의 노랫말처럼 우리들의 기억과 역사도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지난 3일 독일 튀빙겐에서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별세하였다 합니다. 그는 1975년 연세대 서남동 교수의 초청으로 한국에서의 첫 희망의 신학 을 강연한 분으로, 그때 대학원생이던 저는 그분의 강연 장소였던 루스 채플에서 준비를 맡았습니다. 이것저것 분주하게 심부름까지 해야 했기에 강연을 차분히 들을 수 없었지만, 대신 중앙정보부에서 파견된 3-4명 직원들에게 희망의 신학을 소개해 주었던 진기한 추억도 생각납니다. 몰트만은 징집으로 2차 세계 대전 독일군으로 참전 영국과 벨기에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중, 세상이 앓고 있는 문제는 절망이라고 깨달았고, 수용소에서 예수님을 만나 예수 안에 있는 희망을 선포하는데 전념하였습니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저서 <나는 영생을 믿는다>에서 “내 묘비명에는 출생과 부활의 날짜를 적을 것이다. 내가 죽은 날에 나는 부활할 것”이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약간의 우쭐대는 영웅심리 같은 취기(?)에 헐무트 틸리케 박사의 강연장에서 잠깐 쉬는 시간에 수천 명이 보고 있는 가운데 강사 앞으로 나아갔는데, 웬 동양인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앉아있던 틸리케 박사는 내게로 걸어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온 루터교 목사라고 밝히고 한국에서 당신의 책을 잘 읽고 있다, 감사하다고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했던 것은,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큰 추억이 되는 해프닝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때는 1979년 여름 독일 에를랑겐 키르켄 탁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탄자니아에서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로 국제예수전도단 소속 선교사 11명을 포함해 25명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소식을 들으며, 공산권에서만 현지 지도자를 가르쳐온 저의 39주간(동시에 39회)의 강의를 위해 혈혈단신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매회 5일간의 단기 선교 여행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길 수 있도록 무사하게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릴없이 하나님께서 가라지를 심판 때까지 남겨두실까? 그런 생각이야 오래전부터 해 오긴 하지만, 가라지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연약한 사람들이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죽어갔던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너무 야속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먼 훗날 그 악행을 일삼던 자들을 불구덩이에 던져 넣든 그게 한이 풀릴 수 있는 일일까요? 그러나 얼마나 천만 다행입니까? 우리네 인생의 수(壽)가 100년 이쪽저쪽뿐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을 더 크게 먹어야 하겠습니다. 100년까지는 참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수 천 수 만년 동안이나 참으셨는데 말입니다. 우리도 참음의 가치를 맛볼 수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또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님께서 이런 심판의 날을 준비해 놓으셨다 약속해 주시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말씀을 믿기로 하면 어떻습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