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자신의 삶을 살았던 보기 드문 사람, 세례자 요한. / 마 14:1-12.

박성완 2024. 6. 12. 00:00

묵상자료 8427(2024. 6. 12. 수요일).

시편 시 69:4-6.

찬송 28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러시아의 소설가입니다. 까닭은 그의 말들은 대부분이 명언들이기 때문이며, 고생한 탓인지 시대를 초월하는 공감대를 만들기에 충분한 시련 가득 찬 삶을 살았던 때문일지 모릅니다.

    가령 인간이 불행한 것은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다. 그것을 자각한 사람은 곧 행복해진다. 일순간에. 괴로움이야말로 인생이다. 인생에 괴로움이 없다면 무엇으로써 또한 만족을 얻을 것인가? 만약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인간이 그것을 만들어낸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분명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도록 악마를 만들었을 것이다. 불행은 전염병이다. 불행한 사람과 병자는 따로 떨어져서 살 필요가 있다. 더 이상 그 병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하여. 가장 가혹한 형벌은 전혀 무익하고 무의미한 일을 지속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실패했다고 낙담하지 않고, 성공했다고 기뻐 날뛰지 않는 것.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 한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을 이룬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은 얼마나 큰 기쁨과 축복인지 모르겠다.      박성완, 24. 6. 9.

 

2. “세례자 요한의 죽음(1-12)”을 읽었습니다. 한번은 저의 어머니가 독백처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처럼 보잘 것 없는 촌뜨기 아낙은 살려주시고, 저 분처럼 훌륭한 이는 왜 데려가시는지 모르겠다. 너는 알고 있느냐?” 만해 한용운은 <님의 침묵> 못지않게 <알 수 없어요>라는 시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의 세계 구름 너머의 세계를 걸어보게 했다 생각합니다. 알 수 없는 것들을 많이 알려 주었으니까요. 오늘 본문에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이 헤롯 대왕의 제수씨이자 연인인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라고 암시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지낼 때, 유대나라의 허수아비 왕으로 헤롯이 있었는데, 그는 유목 상인 베두인 출신으로 유대인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로마 당국자들에게서 유대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분봉 왕으로 책봉되었으나, 정치적인 실권이 없는 무력한 왕으로, 백성들과 나라를 지키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폭정으로 일관하였습니다. 결국 그를 비난하던 세례자 요한을 살로메의 춤사위를 핑계로 목을 잘라 죽이는 어리석은 왕으로 역사를 더럽혔던 것입니다. 그 후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그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혜성처럼 나타난 유대 마지막 선지자로써 요단강변을 중심으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며, 전 국민적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세례자 요한은, 정치적 혁명은 물론 종교적인 혁명도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오시기로 약속되었던 메시아의 길을 안내하는 광야의 소리꾼으로 그의 소명을 다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에 대한 역할론에 대해서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소명에 충실할 뿐 더 이상의 기대와 야망이 없었던 보기 드문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서 가장 치명적인 패착은 비록 상징적 권력이었지만, 헤롯 대왕을 비판한 일이었습니다. 자기 백성을 돌봐야 할 임금이 로마의 주구가 되는 것은 물론, 하릴없이 주색잡기에만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생의 처를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헤롯은 앓는 이처럼 고통스럽기만 하던 세례자 요한을 제거할 빌미를 조카딸인 살로메에게서 제공받았던 것입니다. 한 때는 저 역시도 세례자 요한의 삶이 너무 허망하다 해서 동정과 연민을 보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쩌면 모든 인간들이 본받을 소명을 따른 삶의 모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마땅히 걸어가야 할 자신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삶인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