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베드로가 받은 천국의 열쇠의 기능. / 마 16:13-20.

박성완 2024. 6. 20. 00:00

묵상자료 8435(2024. 6. 20. 목요일).

시편 시 69:26-28.

찬송 28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베토벤(1770-1827)20대 중반에 이미 이명/耳鳴 증세로 고생하고 있음을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인되었다. 음악가에 있어서 귀울림은 가장 치명적인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말은 그래서 더 감동을 준다.

    “자신의 불행을 생각하지 않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통념을 따르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꼭 해답이 아니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껴진다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저녁 까지 생각할 겨를 없이 움직여보자. 행복은 좋지 않은 기억력에 달려 있다고 한다. 불행에 대한 기억만큼은 다른 일에 몰입하는 것으로 막을 수 있다희망씨, 가슴에 새기는 한 줄 명언, p.288. 박성완, 24, 6. 19.

 

2. “베드로의 고백(13-20)”을 읽었습니다. 고백이라는 말은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오랫동안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되어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고백이 그렇고, 신앙 고백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고백을 너무 쉽게 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것도 신앙 고백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도무지 신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의 대학 동기 중에 목사님 한 분이 단톡방에 옛 추억을 떠올리는 장문의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목회가 너무 힘들 때였던 모양입니다. 수요 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해 강대상 뒤에서 기도를 드리는데, 무심코 오늘은 교인이 한 명도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설교 준비도 기도할 마음도 도무지 들지 않을 그런 때가 있더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의 속내를 홀라당 까발리는 그는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백을 오래전부터 듣고 계시는 분이 계셨던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고백을 남김없이 들어오셨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참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리는 순간이 가장 편하고 자유로운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부끄러운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드렸고, 지금도 보여드리고 있는 유일한 분이니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 흔치 않은 자리처럼 보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오붓이 있는 자리임에 분명합니다. 주님은 처음으로 이런 낯선 질문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인자(예수님에 대한 별칭)를 누구라고 하더냐? 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 가지 대답들이 나왔습니다.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도 있고, 예레미야나 엘리야 같은 예언자라는 사람도 있다 한 것입니다. 틀린 답도 맞는 답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다시 질문을 바꿔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때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가 했던 말 중에서 가장 출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의 평가는 칭찬인지 아니면 여전히 모자라다는 말씀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시몬아, 네게 그것을 알려주신 분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잘 들으라. 이제부터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너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제대로 된 생각을 품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천국의 열쇠가 천국 문을 열고 닫는 기능을 가진 것인지, 아니면 땅에서 매고 푸는 일을 통해 하늘에서도 매고 풀린다는 뜻인지를 말입니다. 첫 번째 말씀은 재론/再論의 여지가 없는 말씀인데 반해, 둘째 말씀은 우리들이 숙제로 남겨두고 많이 묵상해 봤으면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