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왜 그렇게 말씀하실까? / 마 17:1-13.

박성완 2024. 6. 22. 00:00

묵상자료 8437(2024. 6. 22. 토요일).

시편 시 69:32-34.

찬송 25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엊그제 국민일보는 개신교회의 강단 의자의 크기를 문제 삼는 기사가 실려 흥미를 이끌었다. 큰 의자에 압도된 순서자의 작은 모습이 초라해 보이는 것이 연상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제가 참석했던 아산의 한 교회는 예배 순서 담당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강단으로 올라서 순서를 진행하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는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예배 순서자도 예배자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고, 마치 예배의 주인노릇을 하는 양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스럽다. 그리고 예배 순서자가 박사 가운을 입는 것도 문제시하였는데, 박사들이 목에 걸치는 후드는 명예를 상징하는데 반해, 목사의 목에 걸치는 스톨은 말씀의 종이라는 의미임을 생각할 때, 너무도 다른 이해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권위를 누리고 싶은데 인품이나 실력은 따르지 않으니, 이런 보이는 것들로 권위를 세우려는 초라한 그 심정을 가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배 순서자 역시 예배자의 한 사람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성완. 24. 6. 20.

 

2.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1-13)”을 읽었습니다. 저와 같이 모태신앙을 가진 분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문제 중 하나는 성경 말씀에 대한 호기심을 찾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제가 다닌 연세대학교는 채플 출석이 의무였습니다. 그런데 채플에 오시는 강사님들은 목사님보다는 사회 저명인사들이 많았습니다. 성경말씀 보다는 사회적 관심사가 대부분의 주제였습니다. 지금도 기억합니다만,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최현배 선생님의 장례식(1970. 3. 23)에는 당시 유명한 가수 페티 킴씨가 조가를 불렀는데, 생전에 페티 킴씨에게 전화로 격려를 하셨으며 그게 인연이 되어서 장례위원회가 조가를 부탁했다고 했습니다. 엄한 한글학자 최현배씨와 페티 킴의 케미(궁합)가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속화의 장단점에 대해서 우리는 냉정한 분별력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것은 성경의 관심사에 대한 오해가 두텁게 깔려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오늘 본문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예수님과 세 제자들이 다볼산(?)에 오르셨던 일화인데, 그곳에서 서로 떨어져 기도하던 주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변모하신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얼굴은 해와 같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셨다고 했습니다. 이 본문에 대한 성경의 독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대부분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니면 해와 빛으로 묘사된 그 장면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경에서 어떻게 라는 질문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일 저와 같은 모태 신앙인들이 성경에 대해서 무관심 내지는 냉소적이게 되는 이유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머리에 박혀 있는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왜 라는 질문, 근본과 근원에 대한 질문을 품었더라면, 오히려 신앙심이 더 깊어졌을 것인데 말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성경을 과학의 책처럼 분석과 합리성을 찾으려고 한다면 100%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믿음의 책으로 읽게 된다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데 큰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믿음을 위한 책으로 읽자고 강조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변모사건의 일화는 십자가를 앞에 두신 우리 주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실 그리스도로써 잠재력과 내공을 보여주신 예표라고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역사적 예수를 통해서 믿음의 그리스도를 기대할 때가 되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