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꼭대기로 오를까? 맨 밑바닥으로 내려갈까? / 마 20:17-28.
묵상자료 8449호(2024. 7. 4. 목요일).
시편 시 72:1-3.
찬송 51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현대인은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다. 다만 알고 있지 못한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이 말은 남긴 위인은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이다. 그는 <역사의 연구>라는 12권의 방대한 책에서, 인류 문명의 흥망과 성쇠를 도전과 응전이라는 인식의 틀로 기록하였다. 그가 남긴 이 명언에서 우리는 속빈 강정 같은 우리 자신을 가끔 느끼곤 한다.
옛 어른들 보다 아는 것은 많은 것 같은데, 정작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위해 죽을힘을 쓰고 있는지를 모르고 살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슬픈 삶일까? 마치 새로운 삶인 양 불속에 뛰어드는 불나비와 같은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오늘 만난 도전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응전해 봤는가? 박성완, 24, 7, 3.
2. “수난에 대한 세 번째 예고(17-19절)”과 “섬기는 자가 다스린다(20-28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지금부터 2천 년 전에도 이런 치맛바람이 있었다면 여러분은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예수님의 제자들의 어머니가 그 주인공이라면 말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중에는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 살로메는 바로 그 치맛바람의 주인공으로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까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라 생각되니 크게 나무랄 수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적어도 신앙의 어머니라고 하면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 자식이 귀하면 다른 집 자식도 귀한 것을 알아야 할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전말이란 대단했습니다. 꿈도 야무졌다는 말입니다. “주님 나라에 가서는 저의 두 아들 중 하나는 주님 자리의 우편에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 형제들과 모친에게 “내가 마실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겠느냐?” 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마실 수 있습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주님은 그 오른편 자리와 왼편 자리에 앉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놓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정해놓으셨다는 뜻은, 이미 아무개라는 사람을 정해두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그 기준에 맞는 사람이 있으니, 거기에 따르는 것이 우리가 알아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세 모자와 주님 사이에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된 다른 제자들의 불평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에서 영광의 자리에 앉고 싶은 욕망들은 모든 제자들이 한결같이 가지고 있던 관심사라는 말입니다. 중학생일 때 우체국장 둘째 아들이 같은 학년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중학 전과> 라는 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전 학년에서 그만이 가진 책이었을 것입니다. 월말 고사 기말고사 등 모든 시험문제가 그 전과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그는 항상 1등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학년에서 그의 경쟁자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시골 중학교에서는 그 전과 책이 모든 시험의 예상문제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그의 부모님은 선생님들에게 자주 회식을 대접하는 것 같았습니다. 훗날 서울의 H대학을 나와 독일로 유학을 가서 의학을 전공해서 국내 지방 의대에서 학장으로 정년을 맞았으니 우리 동기들 중에서는 가장 출세한 친구입니다. 치맛바람이 성공의 길로 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매우 어려운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제가 부산 YWCA에서 성경을 가르칠 때, 미국인 선교사 수의전 목사님을 청해서 자녀교육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장애를 가진 고아 두 명을 입양해서 훌륭하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자녀교육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었습니다. 밑면이 넓은 삼각형을 그리더니, 맨 꼭대기로 올라가는 삶의 모습은 세속적 성공의 목표이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은 윗면이 넓은 삼각형에서 마지막 한 사람이 되는 꼭짓점까지 내려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삶의 의미요, 목적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말씀의 시각적 가르침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