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우리는 지금 무얼 하며 살고 있는가? / 마 22:15-22.

박성완 2024. 7. 12. 00:00

묵상자료 8457(2024. 7. 12. 금요일).

시편 시 73:7-9.

찬송 43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조선 후기 학자 심재는 송천필담/松泉筆譚 이라는 책을 기술하였는데, 내용은 학문 · 정치 · 경제를 비롯하여 미담과 가화를 정리한 수양서라고 한다. 거기에 나오는 한 일화로, 과거에 응시했던 한 수험생이 낙방한 후 투덜대며 말했다. “좋은 글은 뽑히지 않고, 뽑힌 글은 좋지가 않더군.” 이를 듣던 사람이 시험관이란 두 눈을 갖춘 자라, 글이 좋고 나쁜지는 한 번만 봐도 대번에 알아 속일 수가 없다네. <중략> 그러니 선비된 자는 글을 닦아 양지/陽贄로 삼고, 마음을 닦아 명계/冥契로 삼는다네.” 양지/陽贄란 겉으로 드러나 보답을 말하고, 명계/冥契는 안으로 감춰진 인연을 말한다.

        정 민, 옛 사람이 건넨 네 글자, pp.39-40.

 

2.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15-22)”을 읽었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참 신기함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가난에 찌든 농촌 생활에서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제가, 입학시험을 치러간 낯선 거창 고등학교 강당에서 수험생을 상대로 한 교장선생님의 한 시간짜리 강연에서 눈물 콧물을 다 쏟으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던 것이 제 인생을 희망과 감격으로 바꾼 것이나,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가는 길에 교장 선생님 사립문에 기대어 친구들과 얘기하는 한 여학생에게 꽂혀 그 뒤론 다른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결국 남편과 아내로 연을 맺게 된 일이, 제 인생을 오늘에 있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단 한 순간에 일어났던 기적이었고, 신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연세대학교 강당에서 진행되는 채플에 교목실 조교로 손님 강사님을 모시고 왔는데, 그분의 설교 제목이 바로 오늘 본문이었고, 가이사의 것인 동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인 당신들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라 는 그 잔잔하면서도 인자하셨던 문익환 목사님의 설교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감격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삶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저는 가능하다면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목사가 되고 싶었는데 형편은 지역교회 목사의 길을 걷게 하셨고, 안수 후 3년이 지나자 부산 경성대 신학부의 목회지도과장으로 신약학을 가르치게 되었으니, 교회와 학교를 섬기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기기묘묘하다 깨달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술수에 말려들 뻔한 매우 무서운 함정이 깔린 질문이었다고 복음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트집 잡아 올가미를 씌울까 궁리하던 끝에 나온질문이라고 말입니다. 주님을 공중 부양시키듯 띄우기를 한 후에 던진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참되게 가르치시는 줄 압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아닙니까?” 주님은 그들의 속셈을 알고 계셨다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내게 보이라.” 그들이 한 데나리온을 가져오자 보시고, “여기 동전에 새긴 초상이 뉘 것이냐?” “가이사의 것입니다.” “그러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라.” 대답하신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알겠는데, 하나님의 것이라니? 그들은 고민을 하였고, 그들은 말씀에 경탄을 하며 떠나갔다 기록했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것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다름 아닌 여러 분과 제가 하나님의 형상이었던 것입니다(1:26-28). 어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지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가 깊이깊이 새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이 형상으로 만물을 다스리는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우리의 전부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