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4. 성령강림절후 여덟째 주일] 세례자 요한의 일생. / 막 6:14-29.
묵상자료 8459호.
시편 73:13-15.
찬송 453장.
1.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충고>라는 짧은 시를 썼다. “너는 자꾸 멀리만 가려느냐? 보아라 좋은 거란 가까이 있다. 다만 네가 잡을 줄만 알면, 행복은 언제나 거기 있나니.”
사람들은 무슨무슨 비결을 찾아서 헤맨다. 그러나 모든 비결은 꼭꼭 숨겨져 있는 게 아니고,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웃고 울고 어울리던 벗이었다. 이젠 그걸 붙들고 놓지 말아야 할 때가 되었다. 박성완 24. 7. 13.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여덟째 주일로 복음서 막 6:14-29을 본문으로 “세례자 요한의 일생”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가장 바람직하다 생각하십니까? 소위 성공적인 삶이란 무엇일까?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산 삶이라고 하겠습니까? 그 대표적인 인물이 세례자 요한의 일생이라 하겠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령으로의 삶을 살았습니다(14-19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굴곡진 인생이 아니라 수직 상승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현상이 있는데, 부모들의 지나친 보호와 교육열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어려움 없이 승승장구하는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때문입니다. 그것을 대변하는 것이 치맛바람이고, 학부형 후원회입니다. 그런데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후원회 회장은 그 자녀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리고 고액 과외로 이어지다가, 자녀의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과 대학원의 연구소에발을 뻗어, 고등학교 재학시절에 연구논문의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하는데, 이것이 대학입학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매우 잘못된 것으로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이에 반해서 세례자 요한은 일찍부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전령답게 광야에 살면서 청빈과 말씀으로 연단하였고 특히 회개의 세례를 외쳤습니다.
유대인의 왕 헤롯은 세례자 요한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습니다(20-25절).
헤롯 대왕은 예수님의 탄생기사에 등장하는 인물로, 자신을 대신할 유대인의 왕을 허용치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이것은 헤롯의 뿌리가 유대인이 아니라, 사막을 오가며 장사하는 이두메인으로, 그의 조상은 야곱의 쌍둥이 형 에서였고, 훗날 에돔이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이두메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출생의 약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유대인들을 시기 질투하였고, 언젠가는 그들을 지배하는 꿈을 꾸어왔습니다. 헤롯은 나라의 미래가 백척간두에 있는 때를 틈타, 로마 당국자들에게 호의적이 되어 유대인의 허수아비 왕이 된 것입니다. 소원을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신을 험담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세례자 요한으로, 그의 출생의 비밀 뿐 아니라, 그가 동생의 처를 빼앗아 아내를 삼은 것을 비난하곤 해서, 본문처럼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는 참극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모든 근심걱정을 다 해결했다 생각했으나 그게 멸망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살해하려고 온갖 수단을 부리던 헤롯에게 생을 빼앗겼습니다(26-29절).
한 사람의 일생이 가장 빛나고 아름다울 때는 언제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대로 살다가 세상을 떠나가는 일이겠습니다. 우리 역사에는 위대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섬기던 왕이 자리를 잃게 될 때, 나라의 터가 무너져 내릴 때, 또는 신앙적인 목적을 위해서, 이런 저런 자신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치는 이들이 그들입니다. 아무리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이런 자신만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따르는 이들은 숭고한 일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루속히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부모와 임금보다 더 유명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설악산 비선대만 가면 양인인지 천인인지 모를 수십 명의 이름들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지만, 누구하나 거들떠 보려들지 않습니다. 돌에 새긴다고, 책에 새긴다고,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닌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