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024. 7. 28. 성령강림절후 열째 주일] 세상이 알아야 할 그리스도의 사랑. / 엡 3:14-21.

박성완 2024. 7. 28. 00:00

묵상자료 8473.

시편 75:1-3.

찬송 236.

 

1.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서울을 배경으로 활동한 장 혼/장혼(1759-1828)은 중인 신분으로, 요샛말로 하면 전문 편집인으로 괄목할 성과를 남긴 사람이다. 그는 1790년 교서관/校書館 사준/司準으로 재직하면서 1816년까지 수많은 서책을 교감하여 출판했다. 그가 남긴 평생의 소망/平生志에는 인왕산 아래 옥류동 골목 맨 끝에 있는 허름한 집 하나에 마음이 끌려 늘 그 집을 구입하여 새롭게 꾸미고 싶어 했다. 주변의 자연환경도 마음에 들었고, 도심에 가까우면서도 조용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집값이 50쾌라서 이를 사서 조촐하게 꾸미는 것을 상상하였다.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고 채소밭을 일구고 찾아오는 손님들과 시를 수작하는 호젓한 지블 꾸민다. 그렇게 하는 비용이 250쾌이다. 모두 300쾌이면 이이암/而已痷(장혼의 호)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비용이 없으니 말짱 꿈이다.”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안대회, 고전 산문 산책, pp.536, 547.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열 번째 주일로 사도서간 엡 3:14-21을 본문으로 세상이 알아야 할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로버트 풀검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란 책은, 미국 국회에서도 낭독되는 열풍을 일으켰는데, 만일 학생이 공부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새댁이 밥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이 보다 더 낭패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알고 있으리라 기대했다면 더욱 낭패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다면 어떨까요?

 

세상 사람들이 눈뜨지 못하는 낭패 중의 낭패가 하나 있습니다(14-16).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중요한 것과 더 중요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최근에 저의 주치의가 된 분이 있습니다. 50대 말 정도 되는 분인데, 궁금증을 물어보기라도 하면 큰 소리로 꾸중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주의 점을 한 번도 말해 주지 않았는데, 그걸 제게 덮어씌웁니다. 입틀막을 하니까 더 이상 말문이 닫히고 맙니다. 처음에는 병원장에게 항의 서한을 써볼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그만 두었습니다. 얼마나 환자들에게 시달렸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제게 해 주었다는 주의 말도 누군가에게는 했을지 모릅니다. 의사는 환자를 돕고 싶은 마음이 더 중요한 것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은 선배셨는데, 당신의 제자들을 정말 사랑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선생님이 많은 제자들에게 공부하는 기쁨을 깨우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사도는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17-19).

자녀를 데리고 와서 기도부탁을 하는 교우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이 기대하는 기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충성심, 솔로몬의 지혜, 엘리야의 신실함, 노아의 인내 등등을 자신의 자녀들이 은총으로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해 달라고 말입니다. 제가 가장 힘겨워하는 내용들입니다. 그런 내용들을 이루려면 엄청난 땀과 눈물 그리고 시련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맞춤 기도문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아이에게 철든 인생을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철만 들면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는 철든 인생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기만 하면, 누구나 위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내게 임했는지를 배우려고 힘써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심을 믿어야 합니다(20-21).

우리가 기도하거나 일을 할 때, 그 목적을 붙들어주는 근거가 확실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의 돛을 올리고 인생이라는 먼 길을 향해 힘차게 떠나가지만 오래 버티지를 못하고 주저앉거나 되돌아옵니다. 물거품과 같은 희망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바울 사도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문제의 출발점은 하나님을 떠난 데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세상의 무당이나 박수들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대로 부르거나 내 쫓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들어와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리석을 때는 가르쳐주셨고, 위기에 처할 때는 지켜주셨으며, 낙심하고 슬퍼할 때도 곁에 계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송하고 영광 돌리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윗보다도, 솔로몬이나 엘리야보다도 모세나 노아보다도, 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 지난 주간에 26회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아산에서 가료 중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많은 분들의 기도의 성원을 입었습니다. 감사 또 감사 드립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