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죽음을 맞이하는 주님과 우리들. / 마 27:45-54.

박성완 2024. 8. 6. 00:00

묵상자료 8482(2024. 8. 6. 화요일).

시편 77:7-9.

찬송 147.

 

1.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쟁신 칠인/ 諍臣 七人이란 글을 썼다. 취지는 이렇다. ‘임금은 바른말 하는 신하가 없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바른말을 받아들이지 못함을 근심해야 한다. 말로 간하여 행동으로 받아들이니, 말은 쉽고 행동에 옮기기는 어렵다. 어려운데 임금이 이를 행하면 신하가 쉬운 일을 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데 간하는 말은 헐뜯음에 가깝다. 이런 말을 듣고 성내지 않을 사람이 없다. 신하가 간하지 않음은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서다. 쟁신이 없다고 투덜대는 임금은 밭을 소유하고도 곡식을 심지 않거나, 농사를 지어놓고 추수를 하지 않는 농부다.’

   정 민, 옛 사람이 건넨 네 글자, p.256.

 

2. “숨을 거두신 예수(45-54)”을 읽었습니다. 신앙인들과 비 신앙인들을 구별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제가 임종을 지킨 몇 분이 계시는데, 가족도 있고 교우도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비슷하지도 않았고, 저마다 독특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저의 경험입니다. 모두가 신앙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 앞에서 두려움과 절망을 한 아름 안은 사람처럼,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살고 싶다고 말하는 분이 있는가하면, 또렷한 자기 목소리로 이젠 쉬고 싶습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라고 말씀하는 분도 계셨고 저의 할머니처럼 조용하게 찬송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감으신 분도 계셨습니다. 또 저의 어머니는 저녁을 맛있게 드시고 이제 잠자고 싶으니까 잘들 자라고 하신 후, 이튿날 새벽에 운명하신 것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생과 내생의 갈림길에서 보여준 모습이나 말씀으로 그분의 신앙을 가늠하곤 하였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일은, 생과 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해가 태부족한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고백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사람의 말과 태도에서 그 사람의 신앙을 분별하곤 한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바보 같은 모습들입니까?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 주님은 제가 조금 전에 임종 때 보여준 몇 사람의 예 가운데서 찾을 수 있는 분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첫 번째 예로 든 사람 말입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움과 절망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셨으니 말입니다. “엘리 엘리 라바사박다니.” 다윗 왕이 울부짖으며 외쳤던 말이기도 합니다(22:1). 다윗은 몇 마디 더 붙이셨습니다. “내가 밤에도 낮에도 부르짖어도,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고 말입니다.

    저는 국민일보를 구독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인터넷 뉴스를 보내주어서 신앙 칼럼을 빼놓지 않고 훑어보곤 합니다. 우리 주변 그리고 먼 나라들에서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큰 위로와 용기가 되곤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인간들의 신앙의 높낮이를, 혹은 신앙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그 인간에게 주목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철부지 같은 자식이나 학생을 사람 구실하도록 애를 태우고 힘쓰신 부모들과 선생들의 수고를 전혀 기억하지 않는 분위기에 식상하게 된 것입니다. 저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넘치고 넘치는 은총을 떠올리지 못하는 신앙이란 배은망덕이며, 제 힘으로 살아가는 듯한 인간중심주의에 매달리는 것이 위험스럽기 때문입니다. 인간 자신에 의한 자기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구원이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이해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우리 인간들을 인도하시고 섭리하신다는 것이야말로 참된 기독교 신앙이며, 성경의 중심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진들은 끝까지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가르치고 있음을 눈떠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아멘 그리고 아멘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