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참된 부활의 과정과 의미. / 마 27:55-66.

박성완 2024. 8. 7. 00:00

묵상자료 8483(2024. 8. 7. 수요일).

시편 77:10-12.

찬송 150.

 

1.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은 미국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가 받은 공교육이란 고작 2년에 불과하지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에 들어가며, 초대 우정 국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미국 100달러에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가 남긴 명언 중에는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앗간을 돌릴 수 없다.”가 있다. 지나간 과거를 곱씹으며 후회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소중한 인생을 흘려보내는 우리들에게 정신을 번뜩 나게 하고 있다.

 

2. “무덤에 묻히신 예수(55-61)”무덤의 경비(62-66)”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조연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라는 작은 마을출신이며(23:51), 산헤드린 회원으로(15:43) 빌라도에게 요구하여 자신의 새 무덤에 예수의 시체를 안치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과 무덤에 안치된 일련의 사건을 성경의 증언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한 구석도 신비하지도 않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삶과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들을 지켜본 여인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짧은 생애를 여과 없이 그대로 전하고 있는 말씀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 당시의 제자들과 따르던 무리들 그리고 심지어 비판과 죽이고 싶어 하던 종교적인 적대자들까지도 너무 허망하고 무력한 최후의 모습에 실망과 낙담을 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뭔가 다른 자연현상이나 신비현상이 뒤 따를 것을 내심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절망을 더욱 가중시켰습니다.

    저는 고향에 가면 부모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증조부모님이 모셔진 집안 추모공원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제가 묻히게 될 자리도 알음알음 눈여겨보곤 합니다. 제가 방문했던 독일의 한 시골 마을 노이엔데텔샤우에는 마을 한 복판에 추모공원이 있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가족인지 마을 주민인지 사람들이 나와서 꽃과 나무들에 물을 주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무덤을 가까이 두고 관리하는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망자/亡者와의 관계가 영원히 헤어진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 는 생각은 예나 제나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부활사상은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잡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기독교 신앙은 막연한 희망을 붙잡고 있거나 불확실한 내세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인간세계가 멸망하게 될 것과 새로운 하나님의 세계가 열릴 것을 믿고 고백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오늘 무덤에 안치된 우리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부활의 아침에 일어나실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과 무덤에 내려가심은 마치 지옥에 떨어지는 것과 같았다고 베드로 후서는 말했던 것입니다(벧후 2:4). 참된 부활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과정을 말씀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3. KNCC 신학위원장으로 계시는 묵상식구 오세조 목사님이 두 분 신학자의 도움을 받아 올림픽 단상이라는 글을 발표하셨는데, 일독을 권합니다. 올림픽의 정신이 실종된 상업화된 오늘의 올림픽은 이대로 좋은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