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기. / 행 4:13-31.
묵상자료 8492호(2024. 8. 16. 금요일).
시편 78:18-20.
찬송 50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초대 부통령이자 2대 대통령이 존 애덤스는 아들 존 퀸시 애덤스가 6 대 대통령이 되므로 미국 최초의 부자 대통령이었는데, 그가 남긴 명언 가운데 하나는 “슬픔은 인간에게 진지한 생각의 습관을 가지게 하고, 이해력을 강화하며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입니다. 그러니 고통이나 슬픔은 반드시 불필요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데 유익한 경험을 제공한다 할 수 있습니다.
2. “법정에 선 베드로와 요한(13-22절)”과 “박해를 당한 사도들의 기도(23-31절)”을 읽었습니다. 첫 단락을 정리하면 다음 과 같습니다. 베드로의 능력과 설교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첫째로 베드로를 천하고 배운데 없는 무식한 어부출신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예루살렘 시민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 거지가 걸어 다니는 기적의 주인공으로 그들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문제를 조용하게 마무리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단단히 주의와 위협적인 부탁을 하는 것이었는데, 두 번 다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도는 산헤드린에서 방면되어 사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와서 되어진 일을 보고한 것입니다. 두 번째 단락입니다. 산헤드린에서 곤혹을 치른 두 제자와 다른 제자들은 함께 기도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다윗의 시이면서 기도인 시 2:1-2을 인용함으로 시작합니다. 이 기도의 머리말은 제자들의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방인 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비난과 저주로 험한 사회 분위기를 말하고 있는가 하면, 백성의 관원들과 지도자들이 공갈과 협박을 하고 있는 배경을 암시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제자들의 기도는 다음과 같은 확고한 주제가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는 온 백성과 지도자들이 한 패거리가 되어 주님의 종들에게 위협을 하고 있지만,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도우시기를 비는 내용이었고, 둘째는 주님의 권능의 손을 펴시사 주님의 이름으로 병이 낫고 표징과 기적이 나타나기를 비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교회에서 일어났던 제자들의 설교와 치유의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을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세상 사람들의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자신들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한 시각입니다. 어느 시인에게 시인의 삶의 배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시를 이해해야 옳으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 시인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대로, 아니면 당신의 마음에 닿는 대로 이해하면 그것이 옳은 이해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세상의 지도자를 포함해서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니까 설교가 설득력이 있고 감동적이면 훌륭한 설교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설교자에게 존경과 찬양을 돌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기적과 감동적인 설교를 대하게 될 때, 그 설교자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이해해야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의 눈으로만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신앙의 눈이란 하나님의 은총아래서 살고 있다는 의식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