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얘기, 들어야 할 얘기. / 행 17:16-34.
묵상자료 8535호(2025. 9. 28. 토요일).
시편 84:9-12.
찬송 38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주제를 아주 특별하게 썼다. <충고>
“너는 자꾸 멀리만 가려느냐/ 보아라 좋은 거란 가까이 있다/ 다만 네가 잡을 줄만 알면 행복은 언제나 거기 있나니”
2. “아덴/아테네에 간 바울(16-34절)”을 읽었습니다. 철학의 도시 아덴은 자유 토론 광장이 있을 만큼,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얘기를 서로 나누고 언쟁을 소일거리로 삼는 도시였습니다. 바울 일행은 디모데를 기다리는 동안에 아덴을 살피면서 온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 찬 것을 보고 격분하였습니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덴의 자유의 광장 <아레오바고> 언덕에 서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스피치에 능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논쟁한 후 그들의 권유로 아레오바고에 서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다양한 신앙심을 언급한 후에 이를 빌미로 그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서 소개하겠다 말합니다. 철학의 본산지인 아덴에서 사람들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주제를 토론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던 시원한 해답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낯선 사람들이 들려주는 새로운 얘기에 흥미를 가지곤 했습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연단에 서게 된 배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헬라인들은 자신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고 하기 보다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문제를 가정해 두고 그 문제 풍이에 진심을 보이는 문자 그대로 공리공담/空理空談의 한담/閑談꾼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현실 세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쓸데없는 얘기꾼들이었다는 말입니다. 헬라인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예배하는 현상을 화두/話頭에 올린 것입니다. 그들의 귀는 열렸습니다. 그 알지 못하는 신은 바로 천지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으로, 그 분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에 갇혀 있을 수도 없고, 무엇이 부족해서 사람이 주는 것을 필요로 하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생명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누구나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나주시는 분으로 인간 가까이에 계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전하는 말이나 시인들의 시구도 인용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그 분 안에서 숨 쉬고 살아가며, 우리는 모두 그 분의 자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무지할 때는 참고 계셨지만,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단언하며 올바르게 하나님을 섬겨야 훗날 심판을 면할 수 있다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소개하였습니다. 비웃는 사람들도 있고, 정색을 하며 계속 듣고 싶다 말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의 욕구에 응답하는 말을 할 수도 있고,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도 않은 그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겪는 갈등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가들의 설교를 분석해 보면, 대부분이 청중들과 야합하여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그런 방향으로 설교하는 경향입니다. 답답한 현실에 대해서,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그리고 육신의 질병으로 건강하기를 절실히 바라는 그 마음들을 향해서, 무엇이 적합한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필요를 채우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 이를 두고 은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필요에 대해서 외면하는 교회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발길을 돌릴 것입니다. 자신들의 문제는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교회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문제를 가진 사람이고, 그것을 풀어야 할 절실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교회는 그들의 필요를 해결하는데 무엇이 필요한지 소위 솔루션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2차 3차의 주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진 문제가 어떤 것이든 간에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바른 길을 향하도록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을,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만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과제가 또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고,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살도록 연대/連帶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