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解明을 복음 전파의 기회로. / 행 21:37-22:16.
묵상자료 8548호(2024. 10. 11. 금요일).
시편 87:6-7.
찬송 50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조직이나 이웃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오는 대가가 형편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당신이 헌신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당신답지 않은 결정이다.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마라. 당신은 태생적으로 특별한 사람이며 특별한 재능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은 당신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을 해보자. 누가 무슨 이유로 열심히 살기를 주저하는가? 누가 왜 삼류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가? 무슨 일을 하든 전략 전술 타이밍은 분명히 중요하다. 당신은 헌신하기에 적절한 기회를 찾거나 창출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때를 기다리고만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설사 미래를 위해 실력을 연마하는 중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헌신하는 일은 나중으로 미룰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매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당신은 이미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것은 당신에게 주어진 인생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최대한 헌신하는 일이다. 세상의 반응은 중요하지 않다. 존재의 의미는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가운데 찾을 수 있다.” 켄트 케이스, 그래도/Anyway, pp.104-105.
2. “바울의 해명(37-22:5절)과 ”자기의 개종을 설명하는 바울(6-16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째 단락입니다. 바울은 로마 천부장의 군졸들에 의해 로마 병영까지 붙잡혀 갔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천부장에게 해명을 해야 했고, 다음으로는 죽이라고 아우성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해명을 하게 된 내용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로마 천부장 앞에서는 헬라어로 해명을 하였고, 유대인들 앞에서는 히브리어로 해명을 하였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해명을 명백하게 들을 수 있도록 그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해명을 하였다는 점이 특별하다 하겠습니다. 술수를 쓰는 사람 같아서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말로 해명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로마의 천부장은 바울이 헬라어를 사용하는 것을 반색을 하고 묻기를, 그러면서 최근에 일어났던 반란군 4천명을 이끌고 광야로 도망간 그 두목인지를 묻습니다. 바울은 자신은 소아시아 지방의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로마의 시민인 것을 밝힙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해명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천부장은 군중들을 조용하게 한 후에 바울에게 말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우선 그는 자신이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지만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율법학교 교장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공부한 사람이며, 유대교의 율법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을 잡아들이고, 박해하는 선봉장에 섰던 사람이었음을 말하며,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간 것도 예수쟁이들을 잡아다가 벌주려고 했던 것이었다고 해명합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매스컴의 발달로 웬만한 공인이라고 하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 여론이 나쁘거나 또는 좋을 때에 기자회견이라는 것을 열곤 합니다. 어느 유명 트로트 가수는 자신에게 엉뚱한 가짜 뉴스가 나돌게 되자 기자회견 장에서 단상에 올라가 허리띠를 풀면서 자신의 바지를 내릴까 말까를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런 해프닝까지 벌였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히 요즘은 거짓 뉴스를 퍼트리는 악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정치가들조차 손을 쓸 수 없는 것을 보면, 일단 지르고 보자는 악랄한 수법들이 천진난만한 일반 대중들까지 현혹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가짜 뉴스가 계속 양산/量産 되는 것을 보면, 법의 처벌 수위가 너무 낮은 때문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거짓말의 위험은 사람의 명예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중벌을 내려서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유독 우리나라의 형법 중에는 거짓말과 같은 위증죄나, 남녀 간의 치정에 얽힌 스캔들, 그리고 허위 날조 사건들에 대해서 그 형량이 너무 낮다는 것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법이라 생각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