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곳. / 미 3:9-4:5.
묵상자료 8567호(2024. 10. 30. 수요일).
시편 89:36-37.
찬송 227장(통).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슬람권을 여행하다보면, 인샬라/In Sha Allah” 라는 단어를 많이 듣게 된다. “만약 신이 원하신다면”이라는 뜻인데, 가령 여행 가이드에게 “내일 투어는 몇 시에 출발하나요?”라고 물으면, “4시오. 인샬라!” 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 이 말은 4시일 수도 있고, 4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늘이 도와서 날씨가 좋고, 자동차 타이어도 펑크 나지 않고, 기름도 충분하고, 나도 아프지 않아 기분이 좋다면, 4시에 출발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교보 제작팀, 어쩌다 어른2, pp.241-242.
2. “미가가 이스라엘 통치자들을 고발하다(9-12절)”과 “여호와께서 이루실 평화(4:1-5)”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적인 인사말에는 평화라는 단어가 사용되곤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Peace be with you,” 라든지, 아랍권에서 많이 사용하는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뜻하는 앗살라무 알라이쿰(아랍어: ٱلسَّلَامُ عَلَيْكُمْ)” 이나 “내 안에 계신 신께서 당신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의 의미인 인도 힌두교의 나마스테(Namaste)”가 그 대표적인 말이라 하겠습니다. 이는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근본 목적은 평화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는 천국이나 극락의 상태를 말하는 용어가 된 것입니다. 평화란 말은 전쟁과 분쟁이 없는 이해와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완전한 상태라고 사전에서는 정의합니다. 비록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그런 이상적인 완전한 조화의 상태를 누릴 수 없다 하더라도, 그런 평화를 향해서 힘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헨리 데이비스 소로우가 살았던 <월든> 호수가의 생활은 우리들이 추구해 볼 수 있는 평화의 생활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그런 삶을 위해서 많은 토지를 소작민에게 무상으로 나눠주고, 자신이 쓴 책에서 나오는 인세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82세의 나이에 가출 쓸쓸하게 한적힌 간이역 아스타포보에서 객사하였던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마음에는 이미 평화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평화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미가 선지자가 소개하는 하나님에 의한 평화의 세계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산에 이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산이란, 여호와를 섬기는 성소를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의미는 여호와께 예배하는 자리를 뜻합니다. 둘째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를 만드는 일이라 하십니다. 칼은 보습으로, 창은 낫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셋째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허락된 기회나 소유로 만족하는 생활을 말씀하십니다. 높은 자리도, 많은 재물도 아니라 주어진 것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넷째는 자신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생활입니다. 놀랍게도 인간 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신앙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제정신을 가지고 깨우쳐야 할 것은, 저 구름 너머의 새로운 천국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평화의 나라 조화의 나라였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기도하고 땀 흘려야 하겠습니다. 김민기는 <금관의 예수>에서 천국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을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김민기는 그 나라를 찾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곳”이라고.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