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자신의 죽음을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기를. / 요 12:27-36.

박성완 2025. 4. 16. 00:00

묵상자료 8735(2025. 4. 16. 성주간 수요일).

시편 116:7-9.

찬송 30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부정적이거나 금기사항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과 남은 가족을 위한 현명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이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가까운 가족이 숨을 멈췄을 때, 119를 통해서 사망확인을 하도록 권하는 것은 법적으로 중요하다. 둘째, 사망진단서를 발급해 줄 주치의 연락처를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셋째, 장례식장 가까운 곳에 2-3곳 알아 두고, 빈소와 함께 화장장 예약도 동시에 진행하도록 권한다. 넷째, 사망신고와 재산정리를 빨리하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특히 연금공단에도 알리고, 자동이체 해지를 위해 이체 목록 등을 준비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 다섯째, 죽음은 끝이 아니라, 남은 자들에 대한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음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2. “죽음을 예고하신 예수(27-36)”을 읽었습니다. 우리들 인간의 삶에는 몇 가지 통과의례/Life Passage 가 있는데, 마지막 단계인 장례는 많은 사람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경향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죽음만큼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서 최종 정리단계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별세했을 때 망자가 건강 진료를 받았던 주치의가 누군지 연락할 수가 없어서, 사망 진단서를 준비하지 않고 장례식장으로 곧장 감으로 며칠 씩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남은 자들의 불편은 물론 망자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결례를 범하게 됐다는 애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통과의례 못지않게 미리 그리고 신중하게 장례를 준비해야 함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1991년 어느 날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회관에서는 특별한 모임이 있었는데,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라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은 삶 못지않게 죽음도 우리 인간에게는 중요한 삶의 내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존엄사/尊嚴死 라든가, 연명치료 거부권 그리고 호스피스 봉사와 웰 다잉, 적극적인 장기기증 운동과 같은 주제들이 화두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벌써 2천 년 전 아득했던 시절에 우리 주님은 당신 자신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공개했다는 점을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죽음을 마주대하는 주님에게서 몇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는데, 첫째는 주님 역시 죽음과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27-28). 그러나 주님은 곧 바로 당신의 죽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기를 바라는 말씀으로 바꾸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죽음을 기쁨으로 받아주셨음을 확인했습니다(29-30). 셋째는 주님의 죽음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나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는 길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31-33). 넷째는 주님은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주님을 따라서 빛의 자녀로 살 것을 권고하십니다.

    저는 인생의 통과의례, 생로병사 가운데서 죽음을 통해서 가장 많은 깨달음과 교훈을 얻는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한 젊은이가 뜻을 펼쳐보지 못하고 요절해서 자신의 모든 장기를 기증하고 떠나가는 자리에서 많은 교훈을 받았습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생명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말입니다. 나이 많아 쓸 만한 장기가 없으니 해부학에는 사용할 수 있겠다고 몸을 기증한 노신사에게서도 큰 울림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수많은 제약과 악조건 속에서도 끝까지 그 여린 어깨에 자신의 자녀들을 둘러매고 보살폈던 연로하신 권사님과 장로님의 죽음은 헛될 것 같은 인생이 결코 헛될 수 없음을 일깨워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선하게 떠오르는 한 여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말기 암 치료를 받고 있는 중에도,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다니며 삶의 의미와 존엄을 지키도록 격려하고 기도하던 모습을 말입니다. 그 분을 마지막 심방했을 때, 원자력 병원의 한 병상에서 제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목사님, 이젠 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웅변처럼 했던 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3-14).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