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세상을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은. / 골 3:1-11.

박성완 2025. 5. 16. 00:00

묵상자료 8765(2025. 5. 16. 금요일).

시편 119:43-45.

찬송 34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올해 91세가 된 셜리 맥클레인은 미국인 배우로, “나는 기적의 힘을 사랑한다. 그리고 어려움에 놓였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는 명언을 하였다. 기적은 생각보다 많이 일어난다. 기적을 경험하려면 기적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어떤 위험이라도 감수할 자신만 있다면, 기적은 언제든지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희망씨, 가슴에 새기는 한 줄 명언, p.73.

 

2.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칙(1-11)”을 읽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질문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요즘 눈에 많이 띄는 글들은 특히 나이든 분들의 주장은, 누구도 의지하지 말고 특히 자식도 의지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라고 말합니다. 나이 들어 보니까 서러운 것도 많고 배신감도 많이 든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젊은 날에는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다고 하면, 노년에는 자신을 돌보면서 살라고 합니다. 부모를 홀대하는 자식들의 얘기가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참 못된 사람들이다 싶으면서도, 그들의 진심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살아가는 것도 힘겨운데, 부모님이 무거운 짐처럼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 홀대하고 구박할 수 있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엊그제 신문에서도 좋은데 놀러가자고 모셔간 홀어머니를 공항에 버린 아들 얘기가 있는가하면, 아들 며느리가 짜고 요양원에 버린 얘기도 들려옵니다. 비정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도 효도하는 아들과 며느리를 칭찬해 온 것은 그 시절에도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더 나빠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시대는 달라도 부모 마음과 자식 마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 부모는 열 자식을 돌봐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돌볼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어찌하겠습니까? 내리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부모에게는 소홀해도 제 자식에게는 끔찍한 것으로 고맙게 생각해야 하겠지요. 오늘 본문에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몸은 땅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하늘에 두고 살라 하십니다. 참 어려운 일로,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은 것과 진배없다는 말씀입니다(1-4). 둘째는 세속적인 욕망을 죽이라 하십니다(5-8). 많이 가지려고도, 높이 오르려고도 말라는 뜻입니다.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까닭입니다. 셋째는 거짓말로 서로 속이지 말라 하십니다(9-11). 거짓말은 자기 부정입니다. 자신의 선함과 진실함이 거짓말과 함께 사라져버리니 말입니다.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면서, 세상 사람과는 다르게 살라고 하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미친 얘기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제 스스로는 똑똑하다 하는데, 바보 멍청이가 따로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살이와 절연하고 깊은 산속으로나 아무도 찾지 않는 사막으로 떠나 살게 된 은둔자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도 아니면 세상살이의 일반적인 루틴을 부정하고, 수도자가 되거나 독신자 또는 결혼을 포기하는 성직자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생각해 보면, 이런 세속 한 복판에서 독신자로 살아가는 것이, 높은 바위 위에서 혹은 사막 한 가운데서 은둔자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삶일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매일 전쟁터를 불사하는 시끄럽고 울고불고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평범한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삶이, 그러니까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이 가장 힘겨운 고행일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저의 집 울타리에는 빨간 색 크레졸 병을 여러 개 매달아 두었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뱀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볼까 해서입니다. 어쩔 수 없이 공존해야 한다면, 피차 경계를 정하고 평화협정을 해야 할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는 주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기를 구하는 것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