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변명 : 점술사가 하나님보다 가까이 있으니. / 겔 11:14-25.
묵상자료 8784호(2025. 6. 4. 수요일).
시편 119:97-99.
찬송 7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범선의 <오발탄>에 나오는 한 구절. “양심이요? 양심이란 손끝의 가시입니다. 빼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는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야요. 윤리요? 그건 나이롱 빤쯔같은 것이죠. 입으나 마나 불알이 덜렁 비쳐 보이기는 매한가지요. 관습이요? 그건 소녀의 머리에 달린 리봉이라고 할까요? 있으면 예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없대서 뭐 별일도 없어요. 벌률? 그건 마치 허수아비 같은 것입니다. 허수아비. 덜 굳은 바가지에 다 되는대로 눈과 코를 그리고 수염만 크게 그린 허수아비. 누더기를 걸치고 팔을 쩍 벌리고 서 있는 허수아비. 참새들을 향해서는 그것이 제법 공갈이 되지요. 그러나 까마귀쯤만 돼도 벌써 무서워하지 않아요.” 자신을 조물주의 오발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2. “심판과 회복(14-25절)”을 읽었습니다. 어리석은 우리 인간들은 보통이라든지 보편적이 라든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래 전부터 성골과 진골을 가리려고 발가락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어리석은 도토리 키 재기는 지금도 변함없다는 것이 마음 아픈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전체적인 바탕에 참 이스라엘은 누구인가, 진짜 이스라엘은 누군지 따져보자는 흐름이 깔려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잡혀간 사람들보다는 끌려가지 않고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자들이 참 이스라엘이라는 이른바 정신 승리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8-11장의 내용은 예레미야 33장 24절 이하의 말씀과 너무 닮았음을 지적하는데, 그 중심점에는 유다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간 동족들과 빨리 절연하고 있는 점을 들고 있는데, 결국은 그들이 남기고 간의 주인은 자신들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다 망해가는 판국에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땅의 소유권을 두고 열불을 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15절에는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이 그 땅의 적법한 소유자임을 자처하면서, 끌려간 자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자라는 씻을 수 없는 자만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나안이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 하더라도,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란 더러운 이방인의 땅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회복의 약속을 하고 계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마치 하나님과 약속의 땅을 통째로 잃어버린 사람들이 옛 소유를 다시 찾게 될 것이며, 하나님과 맺는 완전한 계약 공동체가 회복도리라고 말입니다(17-18절). 훗날 이사야 56-66장에서 포로민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을 때, 이 하나님의 결정을 관철시키려는 투쟁은 바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에서 자주 경험하는 여러 종류의 실패와 고난인 하나님의 심판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 깊은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욕심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마음을 바꾸어 새 마음이 일어나도록, 그리고 몸에 박혀 있는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피가 통하는 마음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자나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마음을 건강한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본래의 생명체가 되도록 바꾸기 위함이었다고 말입니다. 이를 가장 확실한 말로 회개라 할 수 있는데, 회개는 완전히 정반대의 방향으로 삶을 돌이키는 것을 의미하는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들이나, 본토에 남아 있는 자들이나 할 것 없이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대신해서 헛된 우상에 미쳐 날뛰던 옛 생활을 청산해야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느 대선 후보로 나올 뻔 한 후보의 부인이 인터뷰한 내용이 오늘의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처럼 보여서 아연실색하였습니다. “답답하고 괴로울 때는 점쟁이나 무당들을 찾을 수밖에 다른 길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역술도 배우고, 손금도 배우고, 필요하다는 모든 것들을 배웠습니다.”고 말입니다. 아! 그랬었구나! 어찌하여 장로나 목사 중에서도 점쟁이를 많이 찾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그 답답한 심정들을 말입니다. 어제 정기 검진일이어서 건대병원을 다녀오는데, 놀랍게도 대학가에 가장 많은 것이 점술사와 타투 집들이었습니다. 장래운, 애정운, 사업운 등 등 궁금증이 수도 없이 많은데, 누구도 귀띔조차 해 주지 않으니, 얼마나 괴로울 것입니까? 그래서 도서관 보다는 그런 한 평짜리 점술사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