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죄를 지은 사람이 죄 값을 받는다. / 겔 18:1-4.

박성완 2025. 6. 5. 00:00

묵상자료 8785(2025. 6. 5. 목요일).

시편 119:100-102.

찬송 48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채근담/ 菜根譚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일이 조금이라도 뜻에 어긋날 때는, 곧 나만 못한 사람을 생각하라. 그러면 원망이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조금이라도 게을러질 때는, 곧 나보다 나은 사람을 생각하라. 그러면 정신이 저절로 분발하게 된다.”

 

2. “책임은 개인에게(1-4)”을 읽었습니다. 어느 교파 신학교에 박사학위를 취득하려고 여러 외국 신학교를 전전했던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분과 가까운 지인에 의하면, 그분은 성품도 온순하고 학식도 풍부했는데, 한 가지 결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을 지도하는 지도교수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 분의 제자로 공부하고 학위 논문이 통과되기까지는 지도교수의 뜻을 따라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동양에는 연좌제라는 무서운 벌이 있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진()나라 문공(文公) 20(주전 230년 경)에 처음으로 삼족(三族)에게 연좌 형을 행하고, 그 뒤 한나라 초에도 이삼족법(夷三族法)’이 있었는데, 삼족은 부모·처자·형제를 뜻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는 약 360년 전인 에스겔 시대에도 이미 아비가 설익은 포도를 먹으면 아이들의 이가 시큼해진다.”는 속담이 널리 회자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동서양이 잘못의 책임을 한 가족에게 3족까지 묻는 잔인한 법이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예언자는 이런 잘못된 법에 맞서는 하나님의 법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잘못이 자녀에게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책임은 해당되는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은 다시는 이런 속담을 말하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며,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분명히 밝히며, 아들의 목숨이나 아비의 목숨도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죄 지은 장본인 외에는 아무도 죽을 까닭이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인 양 전가하는 것은 어떨까요? 가령 소위 조상 탓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말입니다. 이 또한 어리석은 일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서 죄책감과 죄 값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차제에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느 선배 목사님의 얘기였습니다. 봄 대심방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권사님이 자신의 집을 꼭 방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늘 바쁘게 산다는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도회를 마친 후 다과를 들면서 그 남편에게 교회에 나오실 것을 권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남편은 자신은 매 주일 교회에 갔었다고 하더랍니다. 이 선배 목사님은 주일 예배에서 뵌 적이 없었다며 어느 쪽에 앉으셨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머리를 긁으면서 사실은 교회당에는 들어가지 않고, 골프장에 가면서 아내를 교회 정문에서 내려주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교회에 나오신 것이 아니라고 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 세상에서 제가 아내를 가장 사랑하는 줄 아내도 알고 있는데, 날 두고서 혼자서 천국에 가겠습니까? 아내의 옷자락을 잡고서라도 함께 갈 생각입니다.” 라고 너스레를 떨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단호하게 말했다 합니다. “천국에는 아내의 치맛자락을 잡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선생님의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교회에 오셔야 배울 수 있습니다.”고 대답했다 합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의 잘못에 대해서 자녀가 죗값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해당자가 받는 것이며, 다른 누구의 손목을 잡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으로 갈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