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목표점 : 영적 가치에 무게 추를 둠. / 눅 14:12-24.
묵상자료 8801호(2025. 6. 21. 토요일).
시편 119:147-149.
찬송 48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행복만 있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행복은 사라져 버린다. 불행이 있어야 행복도 있는 법이다. 이는 절망이 있으므로 희망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항상 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치일 것이고, 항상 웃는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바보일 것이다. 사람은 울기도하고 웃기도 하면서 삶의 변화를 마주하며 살아간다.” 윤재근, 살아가는 지혜는, pp.174-175.
2. “청해야 할 손님(12-24절)”을 읽었습니다. 누군가를 손님으로 초대할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멀리 사는 친척일 수도 있고, 요즘 뜸하다고 생각하는 동창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는 교역자들과 교우들일 수도 있는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 같지 않게 복잡한 서울 아파트에서는 망설여졌습니다. 그러다 아산에 집을 마련하고, 혼자 지내는 날이 많다보니까 손님을 초청하는 것이 쉬워졌습니다. 주변 환경이 좋아서 이런저런 핑계로 손님들을 초대하곤 합니다. 시골 생활을 동경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이 시골 출신들인 때문도 있지만,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골 생활은 생각처럼 여유롭고 평안하지 않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성큼성큼 자라는 잡초들이며, 채전과 화단에 자라는 식물들을 돌봐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그게 힘들어서 몇 달에 한 번씩 내려왔다가 하루 이틀 지내다가 아들 집으로 도망가듯 합니다. 해야 할 들이 너무 많다는 게 이유입니다. 저는 시골 생활 예찬론자가 되어서 하루 일과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세끼 밥을 지어 먹는 일이며, 청소와 세탁, 장보기, 잡초와의 전쟁과 길냥이와 집나온 개들에게 밥을 주는 일 등을 얘기하면 시골생활에 대한 친화적이던 생각이 싹 가시는 모양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청해야 할 손님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읽어 내려가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제가 그동안 초청했던 손님들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 않은 말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그런 사람들은 되갚음을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보상심리가 작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 이런저런 장애인을 부르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되갚을 수 없지만, 대신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한 사람이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큰 잔치를 준비한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마 22:1-14에는 결혼잔치 비유를 말씀하는데, 내용이 아주 비슷합니다. 하늘나라 잔치와 왕의 잔치라는 주제가 다를 뿐, 구성과 줄거리는 매우 비슷합니다. 특별한 것은 낮은 사람이 높은 이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잔치를 열고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임금과 하나님이 잔치를 열어 백성들을 초청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래 전 옛날에는 가난한 백성들의 처지에서는 아무리 즐겁고 귀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큰 잔치를 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높은 관리나 왕이 큰 잔치를 베풀어 백성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환심을 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거절할 수도 없는 이런 귀한 잔치를 망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신앙인들이 꿈속에서도 희망하는 하나님의 잔치 자리에 이런저런 핑계로 참석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당시나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노래 부르듯 열망하는 천국 잔치는 실제로는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의문과, 다른 하나는 천국 잔치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지와 잘못된 신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저는 둘 다 모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현대 교회가 지향하는 신앙의 목표점은 천국과 같은 영적 가치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현세적인 부귀영화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를 가볍게 생각하는 유치한 신앙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