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841(2025. 7. 31. 목요일).

시편 132:7-9.

찬송 14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중년 남자가 해변을 거닐다가 모래사장에 박혀 있는 주전자 같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뚜껑을 열자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속에 갇혀 있던 종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소원을 말하십시오.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소원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본 남자는 지금부터 1년 후의 신문을 가져오게.’ 종은 즉시 신문을 가져왔습니다. 남자는 먼저 주식란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좋은 곳에 투자를 하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문을 읽던 그의 얼굴이 순간 창백하게 변했습니다. 부고 란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차동엽,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 pp.232-233.

 

2. “사형 언도를 받으신 예수(13-25)”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남의 일처럼 죽음에 대해서 말하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합니다.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通過儀禮 라는 말을 쉽게 해 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매일 죽음을 생각하는 황혼녘을 맞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꼽힌다 합니다. 물론 부고 란을 자주 살피면서도 말입니다. 그리고 까르페 디엠이란 말을 입으론 자주 떠올리면서도, 실제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하기도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특별한 생각이나 몸짓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사는 것에 의미를 더하고, 빗나가지 않도록 목표를 충실하게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다행히 그것은 바울 사도의 생각이었고 삶이었던 것입니다(3:11-14). 오늘 본문은 사형언도를 받으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우선 재판장인 빌라도의 주문/主文을 주목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는 사건의 전말을 정리합니다. 고발 내용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주된 문제는 선동죄였는데, 자신이 직접 심문한 바에 의하면 그 고발을 뒷받침할 만한 죄상이 없었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헤롯의 재판에서도 아무런 흠결을 찾아내지 못했음을 인용합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의 재판에서 아무런 죄를 찾지 못했으니, 자신의 견해는 이 사람에게 매질이나 해서 내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그러자 방청석에 있던 무리들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사람은 죽이고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말입니다. 바라바는 폭동을 일으키고 살인까지 저지른 흉악범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세 번이나 예수에게 사형을 언도할 죄상이 없으니 그리할 수 없다 강변하였지만, 성난 군중은 사형이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를 외쳤습니다. 유약한 빌리도는 군중들의 요구를 듣기로 하고 예수는 십자가에 바라바는 방면/放免한 것입니다. 법치주의를 자랑으로 삼았던 로마의 총독이 인민재판식의 군중에게 항복한 판결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로 세계 최대의 신자를 가진 기독교회는 매 주일 사도신경을 통해서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확인하는 고백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진심과는 다르게 떠밀리다시피 한 판결로 인해서 애먼 죄인 중의 괴수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빌라도에 의해서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빌라도의 법정을 가득 채웠던 그 성난 군중들은 다름 아닌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 모든 사람들의 참된 모습이었다고 말입니다. 예수께 사형을 외치고 십자가형까지 주문하였던 사람들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었다고 말입니다. 빌라도의 고뇌와 그가 재판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오히려 빌라도가 판결을 내린 장본인이 아니라, 그는 가장 어리석고 바보 같은 얼떨결에 재판장의 옷을 입은 허수아비에 불과했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사도신경을 외우면서도 빌라도를 꼭 짚어 말하는 문구에서 마음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역사를 반추해 보았습니다. 역사의 물꼬를 닫기도 트기도 하였던 소위 영웅이라는 사람들은, 한낱 허수아비들에 불과했다고 말입니다. 역사의 물결을 도도하게 흐르도록 만든 제일 장본인은 그 시대를 살아갔던 대중/大衆들이었니 말입니다. 지금도 허수아비들은 여론이라는 명목 하에 대중들의 마음을 살피고 있습니다. 이른바 명태균이라는 사람에게 우리시대의 천재들이라는 작자들이 휘둘리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빌라도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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