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818호(2025. 7. 8. 화요일).
시편 122:7-9.
찬송 21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너와 내가, 당신과 당신이, 마주봅니다. 파랑바람이 붑니다. 싹이 움틉니다. 피곤에 지친 눈을 들어, 사랑에 주린 눈을 들어, 너와 내가, 당신과 당신이 마주봅니다. 마술의 시작입니다.” 에리히 케스트너의 시 <마주보기> 1연과 4연을 옮겼습니다. 자신과 누군가를 마주보기만 해도 세상을 바꾸는 마술이 될 거라니, 오늘은 마술을 부려볼 때인 듯합니다.
2. “예수와 자케오(1-10절)”을 읽었습니다. 자케오와 예수님의 조우/遭遇는 주일학생 시절에 듣고 또 들어서 익숙한 줄거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키가 작고 배가 나온 부자가 엉금엉금 뽕나무/ 혹은 돌 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는 것과, 나뭇잎을 살짝 들어 올리고 주님을 내려다 보다 주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주님은 그의 집에서 오늘 저녁을 묶으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엉겁결에 내려왔고, 자신도 모르게 고백했던 말이, 자신의 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행여 남을 속여먹은 게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 약속했는데, 주님은 그의 집이 구원받았다 말씀하시고, 주님 자신은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화 같은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당사자인 자케오에게 있어서는 식은땀을 흘리다가 기쁨으로 춤을 추게 된 극적인 반전/反轉이 이루어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부자이면서 세상 많은 사람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았던 세관장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아주 드문 얘기가 추억처럼 되살아났습니다. 부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회개를 말씀하는데, 자케오는 재산의 절반을 자발적으로 내놓았고, 이를 실천한 톨스토이는 자신의 재산 전부를 내놓으려 했던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부자는 물신숭배자/物神崇拜者란 카테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또 다른 시각으로 회개의 실제를 말씀하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회개의 방식이라는 다양한 차원을 말입니다. 성경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요 8:1-11). 그녀는 즉결처벌 될 절체절명의 자리에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으로 위기를 넘기자, 그녀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리,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하였습니다. 실로암 망대의 붕괴로 죽은 18명의 사람들이 예루살렘 사람들 보다 죄가 더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일화로(녹 13:1-5), 예루살렘 사람들의 죄과가 얼마나 큰가를 회개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들이 회개할 죄목은 메시아이신 주님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공관복음서가 모두 보도하고 있는 풍랑을 잔잔케 한 일화는(막 4:35-41, 마 8:23-27, 녹 8:22-25)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통렬히 꾸짖는데, 이때의 회개는 자신들의 믿음 없음을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회개란 “알고 짓고 모르고 지은 모든 죄”라는 물타기식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당사자의 구체적인 잘못에 대한 진솔한 내용이 뒤따라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관장 자케오나 <전쟁과 평화>의 작가 톨스토이가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죄란 부유한 재물을 독점하고 있던 것에 대한 고백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을 다해 고백하고 회개할 죄란 무엇인지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3. 풍물시장에 멜빵을 사러갔다가, 독일 시인 에리히 케스트너(1899-1974)의 시집 <마주보기>를 2천원에 건졌습니다. 횡재한 날입니다. 생각은 천천히 하기로 하고,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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