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485(2013. 8. 27. 화요일).

시편 시 115:9-13.

찬송 16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순간 또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역시 생각의 기본 범위가 체질적으로 넓구나. 같이 움직이는 사람들과 뭔가를 같이 즐기거나 나누는 것에, 자연스럽게 먼저 마음이 가 닿고, 그 분위기를 돋우는 것에 저절로 생각이 가닿는구나. 그 점은 사실 모임 때마다 느꼈던 거였습니다. 그 느낌으로 자주 생각했었지요. 저 사람한테 언제나 좋은 일이 많은 건, 그가 마음을 저렇게 넓게 쓰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겐 정말 참 좋은 일이 쉬지도 않고 끝없이 자주 이어집니다. 다들 부러워할 정도지요. 자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부러움의 대상이 좀 변하긴 했습니다. 처음엔 좋은 일이 많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지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좋은 일을 부르는 한 마음 씀씀이랄까, 인간성에 대한 부러움과 열등감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자신에게는 그런 면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지요. 그러고 보면 취향도 생각하는 사고방식도 가치관도 비슷했기 때문에, 모임이 이루어지고 유지된 게 아닙니다. 누군가가 다른 이의 협소함을 이해해 주고,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와의 차이를 잘 받아들이고 인내했기 때문에 이루어지고 유지 됐을 겁니다. 모임 안의 사람들에게 새삼 고마움과 깊은 우정을 느끼면서, 샴페인을 준비했던 그처럼, 어떻게 하면 주위 사람들에 대해 조금 더 크고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마음 확장 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367일 방송>b.

 

2. 지난 여수 수련회에 갔을 때 부둣가에서 광주리에 담긴 무화과 18개를 샀습니다. 그 무화과를 가지고 다섯 부부를 제 방으로 초대해서 얘기꽃을 피웠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잡숫지 못한 바로 그 무화과라며 호객을 했었습니다. 무화과가 그렇게 달고 맛있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종말에 대해서 주님은 무화과나무를 비유로 드셨습니다. 연한 가지와 잎사귀를 보게 되면 여름이 오듯, 주님도 그렇게 오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종말의 날 역시 충분히 감지할 현상이 先行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날과 그 때는 하나님 외에 아는 이가 없다고 못을 박으셨습니다. 소위 미래적 종말관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일지 모르는 종말에 대한 바른 태도는, 깨어있는 생활이라고 하십니다.

   깨어 있는 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제정신을 갖고 사는 삶이며,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삶을 뜻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제정신을 잃고 살아가는 시대 물결을 주목해야 합니다. 인위적으로라도 정신을 잃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술과 마약 그리고 무엇엔가 자신을 내던지듯 하는 중독 증세들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에 모든 책임과 의무를 떠넘기는 것입니다. 전철 안에서는 새로운 풍속도가 자리를 잡은 지 오랩니다. 옆 자리에 누가 앉았는지, 앞에 누가 서 있는지 전혀 개의치 않고, 스마트 폰에 빠진 사람들이 7명 중 5명입니다. 중 고등학생들이 단어를 외우는 시간에 휴대폰 게임에 빠져 등교를 하는 풍경은 낯설지 않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중 고등학생 시절, 대학생 시절이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 시절만의 특징들이 스마트 폰에 빼앗긴 것 같습니다. 딱지를 치고, 시를 외우고, 떼 지어 산과들을 헤매고 했던 그 시절의 추억이 만들어질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땅히 할 일을 하고, 마땅히 해선 안 될 일을 하는 일이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제정신을 차린 삶을 말입니다. 주님 앞에서.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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