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496호 (2013. 9. 7. 토요일).
시편 시 118:18-21.
찬송 15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차례대로 불러서 진학상담을 했습니다.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 “저는 마술사가 되고 싶어요.” 막연한 꿈이 아니었습니다.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모아서 마술학원을 다닌 지 벌써 꽤 된 모양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는 극심했습니다. 야단맞는 것이 일상이었지요. 학생이 말했습니다. “부모님은 절대 저를 이해 못하세요.” 표정에는 부모님에 대한 서운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부모님이 널 이해하실 수 있도록 노력해 봤니?” 학생은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마술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마술사가 되기를 원하는지. 선생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습니다. “그건 부모님한테 무조건 너를 이해해달라고 떼를 쓴 거지.”
가지고 싶은 것을 갖고 위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과 이해가 필요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자신의 입장이나 감정을 늘어놓고 상대가 스스로 납득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까요? 물론 진심이 담겨 있지만, 이런 식의 설득은 실패하기 쉽습니다. 상대에게 받고 싶은 대로 상대를 대하라고 합니다.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상대방보다 나에게 무게 중심이 실려 있어서, 정작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더구나 그 상대가 모두 다른 데 말이지요. 그래서 나온 말이 <백금률>입니다. 앞서의 황금률을 한 단계 뛰어넘어서,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대의 시각과 입장에 서 보는 것이지요. 누군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순전히 내 입장에서만 나를 이해시키려고 했던 건 아닐까? 상대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면 어떨까?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8월 12일 방송>
2. 우리 주님께서 운명하시는 그 시각에 예루살렘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는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기록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것입니다. 십자가 현장과 성전의 휘장과는 다른 장소일 뿐 아니라, 그 목격자들도 다 다를 터인데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성령에 감동된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종종 초자연적 초역사적인 작품처럼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이나 객관성을 무시하려는 시도가 종종 있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역사와 초 역사가 성경에 다 포함되어 있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마치 한 발은 땅에, 다른 한 발은 하늘로 치켜드는 삶처럼, 역사와 초 역사는 균형감각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적어도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인간을 위한 말씀이라고 한다면, 역사에 근거를 두는 것이 먼저이며, 그 다음에 초역사를 덧씌운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소에는 휘장이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 짓는 휘장입니다(출 26:33). 그 지성소에는 언약궤 혹은 법궤가 있는데, 그 안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그리고 십계명 두 돌 판이 그것들입니다(히 9:4).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자리로 생각하였고, 그래서 대제사장이 1년에 딱 한 번 속죄일에 들어가서 속죄제의 행사를 집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다 함은 더 이상 1년에 한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속죄제를 드리는 행사는 일상적인 일로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더 이상 제사장에 의한 속죄 행위가 필요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놀라운 선포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위력이며,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인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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