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798호(2019. 12. 27. 금요일).
시편 57:6.
찬송 1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2011년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봅니다. 온전해 지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노력한다고 항상 그만큼의 결과가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예상치 못한 일들 앞에 실수를 저지를 때도 많아서, 깨질 때도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세상 앞에서 깨질 때의 심정이라는 글쎄요. 헝겊이라는 너덜너덜해진 느낌이고, 사기라면 조각 나버린 것 같지요. 도대체 이 깨져버린 것은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요? 조금 깨어져 금이 가고 오래 된 못생긴 항아리 하나가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주인은 깨어진 물 항아리를 버리지 않고 온전한 물 항아리 똑 같이 아끼며 사용했더랍니다. 이 깨진 물 항아리는 늘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지요. “내가 온전치 못해서 주인님에게 폐를 끼치는 구나. 나로 인해 그 귀하게 구한 물이 새버리는데도, 날 아직도 버리지 않으시다니.” 어느 날 너무 미안하다고 느낀 깨진 물 항아리가, 주인께 물었습니다. “주인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고 새로운 온전한 항아리를 구하지 않으시나요? 저는 별로 소용가치도 없는 물건인데요.” 주인은 그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물 항아리를 지고 계속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길을 지나면서, 조용하고 부드럽게 말했지요. “얘야, 우리가 걸어온 길을 좀 보아라.” 그제야 물 항아리는 그들이 늘 물을 길어 집으로 걸어오던 길을 봤습니다. 길 가에는 예쁜 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듯 싱싱하게 피어 있었지요. “주인 님, 어떻게 이 시골 길가에 이렇게나 예쁜 꽃들이 피어 있을까요?” 주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메마른 산 길가에서, 너의 깨어진 틈으로 새나온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이란다.” 그래요. 어쩌면 깨졌기 때문에, 우리들 인생이라는 길에 꽃이 필수 있는 것일 지도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1년 12월 26일 방송>
2.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시다(20-30절)”과 “새 계명(31-35절)”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첫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선거철이 다가왔습니다. 정치가들의 이합집산은 이념과 정신의 잘 맞는 사람들의 행동 같아 보이지만, 속내는 너 따로 나 따로 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배신의 정치라는 막말을 붙이곤 합니다. 처음부터 그런 패거리들인 것을 뻔히 알면서 말입니다.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이유입니다. 유다의 배반을 말씀하신 것은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우리 인간들의 속성은 어떤 사람에게서도 예외일 수 없음을 말씀하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제가 신대원 학생들에게 목회 신학인가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신입 삼성맨들이 워크맨을 손에 들고서 서울역에서 자세 제품 선전을 하고 있는데, 그들의 열정은 신앙에 가깝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전도자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며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해공동체(利害共同體)와 신앙공동체(信仰共同體)의 차이라고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 땐 열정을, 이익이 없을 땐 냉담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은 인격에 바탕하고 있어서 삶으로 자신의 신앙을 증거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아멘 할렐루야를 습관적으로 열창하는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와 같다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흥미로운 점은, 주님의 배반 예고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그 장본인이 궁금했을 것이고, 베드로의 사인을 받은 요한이 주님께 물었는데, 주님께서 빵을 포도주에 적셔서 건네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가 놀랍게도 돈주머니를 맡은 가룟인 유다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주님께 빵을 전해 받아먹은 유다의 마음에 사탄이 들어가게 되었고, 배반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가룟 유다를 비롯해서 모든 제자들, 그리고 모든 인간들은 배반의 피가 그 몸속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제자가 스승을, 백성이 지도자를 배반하는 역사는 세상 끝날 까지 계속될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 배반자가 될 수 있다면, 누구든지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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