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289(2021. 5. 1. 토요일).

시편 시 148:11-14.

찬송 33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고갯길을 넘고 있었다. 그때 세 소년 거지가 나를 지나쳤다. 첫째 아이는 잔등에 바구니를 둘러메고, 바구니 속에는 사이다병, 간즈메통, 쇳조각, 헌 양말짝 등 폐물이 가득하였다. 둘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셋째 아이도 그러하였다. 텁수룩한 머리털 시커먼 얼굴에 눈물 고인 충혈된 눈, 색 잃어 푸르스름한 입술, 너덜너덜 남루, 찢겨진 맨발. ! 얼마나 무서운 가난이 이 어린 소년들을 삼키었느냐! 나는 측은한 마음이 움직였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졌다. 두툼한 지갑, 시계, 손수건. 있을 것은 죄다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로 이것들을 내줄 용기는 없었다. 손으로 만지작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다정스레 이야기나 하리라 하고 얘들아!’ 불러 보았다. 첫째 아이가 충혈된 눈으로 흘끔 도려다 볼 뿐이었다. 둘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셋째 아이도 그러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너는 상관없다는 듯이 자기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하면서 고개로 넘어갔다. 언덕 우에는 아무도 없었다. 짙어가는 황혼이 밀려들 뿐.

<기독교 사상, 20143월호, pp.131-132, 옮김>, 윤동주, <투르게네프의 언덕>, 19399.

 

2. “그리스도인의 생활원칙 2(12-17)”을 읽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이라는 자의식을 바탕에 두고, 다음 사항들에 대해서 힘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서로 돕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그리스도의 평화가 마음을 다스리게 하며, 항상 감사하고, 서로 가르치고 서로 충고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일이든 말이든 주님의 이름으로 하라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주목할 것은 크리스천이 깊은 애정과 존경을 표할 대상은 같은 동료인 인간과 하나님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천은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지극한 존경을 가져야 한다는 권고입니다. 며칠 전 2021년 오스카 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수상자 윤여정씨는 최근의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현상에 대해서 무지개의 일곱 가지 서로 다른 색깔이 어울릴 때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남과 녀, 백인과 흑인,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등으로 나누는 것은 옳지 않으며, 서로 껴안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소감으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우리에게 내가 사랑할 내 이웃이 누구인가?”를 묻게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대안으로 보이는 형제 사랑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영생의 길목에서 반드시 터득해야 할 이웃사랑의 과제라고 말씀하는 때문입니다(10:25-37). 요즘 한 노철학자의 강의가 핫하게 유투브를 달구고 있습니다. 저도 시청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그 분이 쓴 책을 통해서 많은 감동을 받은 터라, 학부 시절에 그분 강의를 딱 한 과목 신청해서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더는 듣지 못했습니다. 마침 그 시절에 아주 유명했던 안병욱 교수님과 다른 한 분 교수님과 같이 노철학자는 유럽을 여행하며 나눈 대화중에서,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는데 결국 불교는 쇠할 것이고, 유교는 흥할 것으로 예견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그분의 강의의 주류를 이루는 견해인데, 결국 도덕적 사회를 지향하는 종교만이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불교도 유교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아무튼 도덕 사회에 희망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구원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가 과연 도덕적 지향점을 가지는데 주력하는 게 기독교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데는 많은 회의가 든다 하겠습니다. 그것은 유대교의 지향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도덕적 구원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반기를 든 것이 기독교 신앙인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현할 수 없음을 깨우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도덕적 사회를 구현하려는 노력은 바람직하지만, 부도덕한 인간에게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프랑스의 수학자 브앙칼래의 도덕주의의 약점을 직시해야 하겠습니다. 완전한 도덕적 인간을 꿈꾸는 것은 바보짓임을 수학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도덕적 인간이 되는데 있는 게 아니라,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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