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61(2021. 7. 12. 월요일).

시편 시 18:20-22.

찬송 44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까뮈는 어렸을 때 축구를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눈만 뜨면 밖으로 나가,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축구를 할 정도였지요. 그러면서도 정작 까뮈는 동네 공터에서 가장 많이 안 뛰는 소년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 때문이고, 신발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까뮈가 축구를 하는 걸 아주 싫어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신발이 닳는 게 싫으셨던 거지요. 또 몸이 약한 까뮈가 너무 지쳐서 돌아오는 것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까뮈가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행여라도 축구를 했는지 신발 밑 부분을 검사했습니다. 그러니 까뮈는 축구를 하되 좀 덜 뛰는 골키퍼 위치를 택했습니다. 알제리 대학시절 까지 대학팀의 꼴 키퍼를 했습니다. 그 때를 회상하는 한 글에 까뮈는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나의 축구팀을 그토록 사랑했던 이유는, 열심히 뛰고 난 뒤의 나른한 피곤함과 더불어 승리했을 때의 기쁨과, 패배한 날 저녁이면 맛보게 되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어리석은 충동 때문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승리한 날의 기쁨까지만 이겠지요. 그 기쁨 때문에 힘들어도 축구들 그토록 사랑한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감성이 뛰어난 그에겐 그 패배의 느낌까지도 축구를 그토록 사랑하게 해 주는 이유가 됐습니다. 그런 감성과 느낌의 소유자이니 운동화나 할머니 때문이 아니라, 폐렴 때문에 더는 축구를 못하게 됐을 때, 글을 쓰는 작가가 된 것은, 당연하고도 또 다행스런 선택이었을 겁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716일 방송>a.

 

2. “사울이 왕으로 뽑히다(17-27)”을 읽었습니다. 우리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는 벼슬이라 생각되는 자리에 앉고 난 후에 살피면 그 어리석음이 잘 보입니다. 벼슬 직전에는 대단히 겸손한 사람이었고, 청렴한 사람인 경우가 많은데, 벼슬에 오르자 완전히 딴판으로 변신한다는 점입니다. 교만하고 사사로운 이권에 개입하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졸개들을 거느리고 싶어 굽은 인사를 합니다. 그 결과는 부끄러운 역사를 쓰고 말곤 했습니다. 이런 대표적인 위인으로 사울을 꼽을 수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이게 한 후, 야훼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켜주시고, 그 많은 시련을 이기도록 도와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만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저버리고 왕을 세워 달라 요구하니, 이제 지파와 씨족별로 야훼 앞에 서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왕이 될 사람을 뽑았는데, 먼저는 지파에서는 베냐민 지파를, 다음으로는 마드리 갈래를, 그리고 마침내 기스의 아들 사울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얼굴을 숨기고 있어서 찾은 끝에 짐짝들 뒤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백성 앞에 세우고, 이만한 인물이 없다고 소개하자, 백성들은 우리 임금 만세!”라고 환호했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군주제도에 대해 설명한 후, 이를 기록으로 남겨 보관하게 했습니다. 백성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사울도 자신의 집이 있는 기브아로 내려갔는데, 사울을 멸시하는 사람들과 그를 얕잡아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는 사울의 인물됨이나 그의 태도가 소극적인 점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우리는 사울이 왕이 된 것은 그 자신의 능력이나 업적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점입니다. 사울 자신 역시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왕으로 뽑혔을 때, 짐짝들 뒤에 얼굴을 숨기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초심을 유지할 것을 당부하는 말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예나 제나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공과 능력을 몇 배로 부풀리면서 까지 자화자찬의 향연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잘못까지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심은 간데 온데 없어지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어리석은 자의 멸망 길을 재촉합니다. 권력의 무상함은 물론 금력이나 명예욕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가 너무도 어려워서, 처음부터 그 길에 들어서지 말아야 하는 게 옳지 않나 싶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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