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471(2021. 10. 30. 토요일).

시편 시 37:14-17.

찬송 15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케서린에게 그와의 시간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도 가장 불행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 그녀의 남편은 알마씨와 아내의 관계를 눈치 채고, 질투심으로 사막위에서 비행기를 추락시키지요. 사고 소식을 접한 알마씨는 절규하며 케서린을 동굴로 옮깁니다. 그는 그녀를 따뜻하게 해 주려고 낙하산으로 감싸고, 불을 피워서 아카시아 가지를 태우면서 동굴 구석구석까지 연기를 가득 채워놓습니다. 그리고 말하지요. “도움을 청하러 가야 해. 케서린, 돌아올게, 빨리 돌아올게.” 알마씨는 거의 미치광이처럼 그녀의 이름을 외치면서 그녀를 구해줄 사람들을 찾아 나섭니다. 결국 알마씨는 중요한 군사정보를 독일 군에게 팔아넘겨야 했지요. 케서린,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결국 어렵게 그녀를 구하러 동굴로 갔지만, 케서린은 이미 그를 기다리다 죽어갔고, 알마씨는 케서린을 안고 달빛이 있는 사막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사막을 사랑했던 영국인 환자는 이렇게 말하지요. “사막은 뺏거나 소유할 수 없다.”고요. 멀리서 보면 사막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막 안에서는 한 시도 딴 눈을 팔수가 없지요. 너무나 변화무쌍하기 때문에요. 사랑도 언제나 난간 위를 걷는 곡예와 같고, 우리가 사는 곳 역시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사막과도 같습니다. 소유할 수가 없어서, 손에 쥘 수가 없어서 애타고, 앞을 알 수 없어 속이 타는 사막과 같은 삶. 그런 내 삶의 물의 지도와 같은,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는 누구일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920일 방송> b.

 

2. “우리의 부활(12-28)”을 읽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이후부터 영원히 사는 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게 된 사건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흉년에 자신을 돌봐준 사렙다 여인의 아들이 죽었을 때 살려주었고(왕상 17:8-14), 예수님은 나인성의 이름 없는 과부의 아들을 상여에서 살려주셨고(7:11-16),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셨고(5:35-43), 또 베다니의 마르다 자매의 오라비 나사로를 죽은 지 나흘 만에 살려주셨습니다(11:38-44). 심지어 사도 베드로 역시 욥바에서 죽은 다비다를 살렸습니다(9:36-43). 이렇듯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인물들이 성경에는 자주 등장하고 있지만, 이들을 부활했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은 또 다시 죽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로 규정하는 이유가 예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부활의 의미를 가르쳐야 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들이 믿는 기독교 신앙은 모두 허사가 되고 만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의 신앙이 반드시 부활이라는 진리위에 서 있어야 한다고 증거합니다.

   모든 신앙은 불확실성과 의심이라는 토양에서 자라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지나가는 동안에 넘어져 불신앙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저를 가르치신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은 의심을 통해서 신앙으로라는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부활을 포함해서 영생의 소망은 의심의 용광로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도마는 주님의 부활을 의심한 인류를 대표한 지식인입니다. 그런데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자리에서 주님을 나의 하나님 !”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그를 향해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하셨습니다. 오늘 사도는 죽음과 부활의 관계를 죄라는 문제로 풀어주고 있습니다. 죄가 죽음을 가져왔다고 말입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죄를 청산한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셨다고 말입니다. 이 진리는 인류 역사에 전무후무한 말씀입니다. 죄를 청산한 인간은 역사에 등장한 적이 없습니다. 백팔 번뇌나 선한 공덕으로 사성제(四聖諦)를 이루고 팔정도(八正道)에 이른다는 불가의 가르침은 이론에 불과할 뿐입니다.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구원자)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만이 죄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진리는 믿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은총입니다. 의심의 강을 열심히 헤엄쳐 강 저편의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 는 진리를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은총입니다.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